문책성 경질의 배경에는 이건희 회장의 진노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울산 남구 여천동 SMP 공장 신축 현장에 있는 SMP 사무실, 삼성엔지니어링 사무실 2곳, 경기도 화성과 용인에 있는 물탱크 제작업체 다우테크 사무실 등 총 5곳을 경찰이 압수수색한 것도 경질 인사의 배경 중 하나가 됐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산업안전 환경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경제 규모는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그 뒤에는 OECD 산재 사망만인율 1위라는 오명이 있다. 근로자 1만명 당 사망자 수는 0.96명으로 선진국의 5배 수준을 넘는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산재사망 노동자는 2만7370명. 해마다 2500명, 하루에 7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고 있다. 경제적 손실도 크다. 지난 10년간 산재로 인한 경제적 손실액은 154조1383억원이다. 연간 15조원의 손실로, 이는 올해 국가 예산(342조원)의 4.4%에 이른다.
이러한 막대한 인적, 경제적 손실에도 개선이 안되는 요인은 뭘까.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전근대적이고, 반복적인 산재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은 ‘가벼운 처벌’에 있다.
최근의 사례만 놓고 보자. 지난 2011년 이마트 탄현점에서 작업 인부들이 냉매가스에 질식돼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러나 벌금은 100만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GS건설은 경복궁 미술관 폭발 화재사고로 4명의 사망자를 냈지만 GS건설 소속 현장소장이 벌금형 1500만원을 받았을 뿐이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위험 관리를 ‘원청’과 ‘하청’ 관계로 해결한다. 사고가 날 경우 피해 근로자와 고용관계에 있는 사업주가 책임을 지게 돼 있으므로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원청 사업주는 처벌받지 않거나 수백만원 수준의 가벼운 벌금형만 받는다. 이는 산업 재해의 책임에서 상당 부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청사 선정은 주로 공개입찰의 과정을 밟는다. 최저가격이 낙찰에 우선시되는 만큼 하청업체의 작업자들은 안전보다는 공기 단축에 매달리게 된다. 결국 작업자들은 사고가 잦을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내몰리게 된다.
여기에 규제완화도 한몫을 했다. 과거 정권들은 경제를 살린다는 이유로 오염물질 배출관리인 의무고용제도 폐지와 같은 다양한 규제 완화를 실시하며 기업의 경영활동을 독려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은 경제는 성장해도 산업재해는 줄지 않는 반작용으로 돌아왔다.
상황은 이런데 기업들은 최근 경영활동에 장애를 주는 규제가 늘어나고 있다며 볼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5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통과한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유해한 화학물질을 배출한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개정안은 시작부터 기업들이 반발했고, 결국 논란이 된 과징금 부과 조항은 ‘기업 전체’에서 ‘해당 사업장’으로, 부과율은 ‘10% 이하’에서 ‘5% 이하’로 대폭 완화됐다. 하도급업체가 누출 사고를 일으킬 경우 원청업체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연대책임 조항도 원청업체에 대해 형사적 책임까지는 지지 않도록 하는 방향으로 수정됐다.
그러나 업계는 여전히 반발 중이다. 최근 만난 한 대형 화학업체 고위 관계자는 “이것은 모두가 다 죽자는 법”이라며 “석유화학업종 영업이익률이 3%대인데 5%의 과징금을 매긴다면 회사는 망한다”고 성토했다.
여전히 작업자의 생명과 지역 주민들의 안전은 뒷전이다. 이윤을 위한 신규 생산시설 투자에는 적극 나서고 있지만, 수십 년된 노후시설의 개보수에는 여전히 인색한 것이 대부분의 기업이다.
이번에 계열사 대표 경질까지 실시한 삼성그룹은 2014년까지 1조1000억원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화학물질 관리 개선에 투자하고, 안전관리 표준을 제정하는 등의 대대적 안전환경 강화 종합대책을 내놨다. 이번 대책이 산업재해를 줄이는 하나의 계기가 될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놓는 미봉책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