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회장은 지난 3일 인재 육성에 대한 철학을 반영한 신인사제도를 발표했다. 인사대상자 별로 점수를 매겨 석차순으로 서열화했던 것을 폐지한 것이 핵심이다. 대신 개인별 역량 육성에 초점을 두고 평가와 보상을 시행키로 했다.
개인의 역량은 공정성, 소통, 투명성, 통찰력 등 45개 항목에 대한 개인별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 상위 역할 수행 가능성을 따져 승진 여부를 따지게 된다. 4만3000여명의 전 직원 중 50% 가량이 외국인이고 매출의 60% 이상을 해외에서 거두는 만큼, 글로벌 경영에 부합하는 인사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생각이다. 개인별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는 일은 평가의 일방적인 방식에서 피평가자와의 대화를 통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박 회장이 이처럼 재계 그룹 중 유일하게 파격적인 인사를 시행한 이유는 기존 인사제도가 개인의 발전과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두산 관계자는 “고과 점수를 매겨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우는 방식은 가장 쉽고 보편적인 평가 방식이지만, 개인별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고 임직원 개인의 발전과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두산은 새 인사제도 시행을 계기로 최고경영자(CEO) 선임 등 공시 대상을 제외하고는 인사 결과를 내·외부에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만 업무적으로 필요한 관련자에게만 결과를 알릴 방침이다. 연공, 직급 호칭 위주로 이뤄지는 승진 관행을 없애기 위해서다.
박용만 회장의 신인사제도는 창업주인 박두병 회장의 ‘사람 중심’ 경영을 한 층 강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두병 창업주는 과거 6.25 전쟁 당시 직원들이 무장공비 피습을 받은 트럭에서 목숨을 건 모험 끝에 부품과 엔진을 회수하고 회사에 돌아온 것을 보고 불 같이 화를 냈다. 당시 그는 직원들에게“자동차는 다시 만들면 되지만, 사람 목숨은 다시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전경련은 이 처럼 인재를 중시한 박두병 창업주의 자서전인 ‘박두병처럼-사람이 미래다’를 펴내기도 했다.
두산 관계자는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더 높은 점수를 받는 ‘누구’에 중점을 뒀다면 앞으로는 임직원 각자가 서로 어떻게 다른지 파악하고, 개별 특성에 맞춰 어떤 역량을 향상시켜야 할지를 대화를 통해 찾아 나가는 방안을 내 놓은 것”이라며 “사람을 중시한 선대회장의 뜻과 일맥상통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