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죽은 경제학자의 창조경제 - 한성안 영산대 경영학부 교수

입력 2013-04-0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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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안 영산대 경영학부 교수
경제에 관해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인간의 먹고사는 총체적 방식이라고 정의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모든 경제학자들이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접근 방법에 따라 ‘경제학파’라고 부른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학파가 ‘신고전학파’다. ‘국부론’으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한 후 19세기 말 레옹 왈라스에 의해 체계화되어 20세기 중후반 밀튼 프리드먼에 의해 꽃을 피웠다. 미국대학은 오늘날 이들의 본거지다.

이 학파에 속한 학자들이 한국 경제학계에서 거의 90% 이상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우리 사회의 ‘주류’이며, 혜택을 가장 많이 입은 집단이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그들은 현실을 ‘완전 경쟁시장’으로 이해한다. 시장 참여자의 수가 너무 많아 한 사람의 행위가 시장 전체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 그들은 주어진 가격을 받아들여 상품을 거래하는 수동적 존재일 뿐이다. 상품을 만들어 파는 공급자들의 규모와 성질은 하나같이 똑같다. 능력과 성질이 같으니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고, 시도할 수도 없다. 그들은 시장이 부여한 조건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자신의 행위를 적응시킬 뿐이다.

신고전학파 학자들이 생각하는 완전 경쟁시장에서 공급자는 무기력한 촌로나 습관적으로 물건을 건네주는 점원과 다르지 않다. 치밀한 이해타산과 익숙한 방식에 따라 안정을 선호하는 경제적 인간, 곧 호모에코노미쿠스일 뿐이다. 이들로부터 우리는 창조나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

완전경쟁을 통해 이른바 ‘균형’이 달성된다. 그것은 매우 안정적이어서 외부로부터 강력한 충격이 없는 한 변하지 않는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의 눈에는 자본주의 시장은 ‘죽은 사회’와 같다. 하지만 죽은 사회는 균형이라는 ‘과학적’ 용어로 거듭난 후 인간이 지향해야 할 매우 바람직한 상태로 찬양된다. 그들은 균형은 조화롭고 아름답다고 노래한다. 따라서 이 안정되고 조화로운 상태를 어지럽히는 활동이나 행위자는 나쁘다. 안정과 습관은 선이고 변화와 혁신, 그리고 창조는 악이다.

더 나아가 신고전학파 경제학에서 변화와 혁신, 그리고 창조는 자신의 밥벌이 수단인 이론모형을 망가뜨려 그것을 추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혐오한다. 그들에겐 죽은 사회가 오히려 아름답다.

하지만 ‘진화경제학파’에 속하는 조지프 슘페터와 소스틴 베블런은 자본주의 시장을 다르게 이해하였다. 둘은 각각 ‘경제발전의 이론’과 ‘유한계급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슘페터는 자본주의 시장이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균형 상태를 유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끝없이 변화하며 불균형 상태에 빠진다.

왜 그럴까? 시장의 공급자 중 ‘혁신기업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고전학파의 공급자와 달리 슘페터의 혁신기업가는 치밀한 이해타산과 습관에 의지하면서 안정을 바라지 않는다. 그는 그것들을 거부하고 불확실한 미래에서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감행하는 인물이다. 혁신기업가는 호모에코노미쿠스가 아니라 돈키호테이며 영웅적 인간인 것이다. 그는 시장의 조화와 안정을 교란한다. 하지만 새로운 생산방식과 새로운 제품, 새로운 시장 나아가 새로운 조직을 창조해 낸다. 따라서 이러한 ‘창조적 파괴’는 좋다.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시장은 완전 경쟁시장처럼 가격경쟁을 거쳐 균형으로 죽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혁신경쟁 때문에 생명력을 얻어 간다. 오늘날 ‘네오슘페터리언 진화경제학파’로 불리는 이 학자들에게 변화와 혁신은 선이고 안정과 조화는 악이다. 그 경제학 체계 안에서 변화, 혁신 그리고 창조는 자연스럽다. 그것들은 이 경제학 모형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의 키워드가 창조경제라고 한다. 그런데 개념을 도입한 사람은 물론 주무부서의 수장이 될 사람도 그게 뭔지 모른다. 창조와 혁신은 각각 베블런과 슘페터에서 나왔지만 그들의 설명에서 이 자이언트들의 어떤 흔적도 발견할 수 없다.

웃기는 일이지만 당연하다. 모두 혁신과 창조에 두려움을 느끼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박근혜 정부의 열렬 지지자들인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주군 앞에서 모두 꿀먹은 벙어리들이다. 사회의 온갖 혜택을 누리면서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이 괜히 자리만 꿰차고 앉아 있다. 죽은 경제학자들로 충만한 사회에서 창조경제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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