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부잣집에서 배운다]공정경쟁, "흉년에는 땅 늘리지 마라"

입력 2013-01-3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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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 이용 헐값에 구입 안해… 대기업 골목상권 침해 일침

경기불황 속에서 대기업이 무분별한 골목상권 침투와 불공정한 거래로 중소상인들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다. 특히 재벌 2, 3세들이 빵집이나 커피숍 등 동네 상권을 체인점 형태로 장악하고 있어 소상공인들의 생존권까지 위협받고 있다.

공정사회란 부패가 없고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며 사회적 배려가 있는 사회를 말한다. 그동안 재벌들은 대기업 중심의 성장주의 경제정책과 사회적 혜택 속에서 성장했다. 사회적 혜택으로 성장한 만큼 이젠 과다한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받았던 혜택을 돌려줘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경주 최부잣집은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파장 물건은 사지 말고, 값을 깎지 마라’는 가훈을 제시해 공정경쟁 정신을 강조했다. 최부잣집은 흉년기 궁핍한 농부들이 마지못해 헐값에 땅을 내놓더라도 이들의 땅을 사지 못하도록 경계했다. 지금과 달리 조선시대 가난한 농부들에게 논밭은 생명줄과 같았다. 하지만 흉년이 들면 수천명씩 굶어죽는 상황이어서 굶어죽지 않으려면 논밭을 팔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최부잣집은 이런 궁박한 위기를 이용해 이익을 취하지 않았고, 꼭 사야 할 때는 제값을 주고 공정하게 사들여 가문의 명성과 평판을 유지했다.

최부잣집은 부를 축적하는 데도 절제와 배려가 있었던 것이다. 흉년이 들면 다른 지주들처럼 헐값에 땅을 사 부를 축적하기보다 오히려 개인재산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을 구휼했다. 물건을 살 때는 제값을 다 주었고, 비록 가난하지만 인재(人材)가 있을 때는 남모르게 후원하는 등 사회적 배려를 중시했다.

최부잣집은 경제적 약자의 약점을 이용해 헐값에 물건을 사는 것을 금했다고 한다. 실제 최부잣집 살림을 맡아 관리하던 청지기는 절대로 파장에 시장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아침에 일찍 가 싱싱할 때 정당한 가격을 내고 사도록 했던 것. 시간의 긴박함을 이용해 부당한 가격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게 되면 나중에 상인들의 빈축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최부잣집 가훈은 경제적·사회적 약자를 충분히 배려하고, 그 배려가 결국 자신에게도 덕이 돼 돌아온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강식 경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당시 봇짐장수나 등짐장수들이 파장기에 어쩔 수 없이 물건을 싼 가격에 ‘떨이’를 하는데, 최부잣집은 이때 상대의 약점을 노려 사업하지 말라고 한 것”이라며 “파장 물건은 시장 가격 질서의 혼란을 줄 수 있고 사더라도 정당하게 제값을 주라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최부잣집의 이러한 공정경쟁 정신은 현 사회지도층과 대기업이 배워야 할 덕목이다. 특히 최부잣집이 정당한 부를 유지하고자 자손들을 독자나 형제만 두는 등 몇대에 걸쳐 자손의 수를 적게 했던 정신은 재벌가 2, 3세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2, 3세로 내려가면서 자손이 많아져 빵집, 커피숍, 심지어 떡볶이집 등 골목상권까지 침투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도 본인보다는 자식들의 병역비리나 부당한 재산축적과 가족들의 땅 투기 등으로 낙마하는 인사들이 많았던 점을 비추어보면 최부잣집의 정당한 부 유지 비법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현재 사회지도층이 존경의 대상이 아닌 질시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들 스스로 그동안 땅 투기를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탈법과 불법을 마다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을 요구한 부 축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존경받는 사회지도층으로 거듭나려면 한번 최부잣집의 공정경쟁 정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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