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를 강조하는 박근혜 당선인의 ‘GH노믹스’와 보폭을 맞추기 위함이라는 분석이어서 국민연금의 지분율이 높은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25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24일 동아 제약의 기업분할 및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결정했다. 핵심사업의 비상장화로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 움직임은 이미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2565개 안건(기업 수로는 641곳) 가운데 436건(17%)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5년전인 2008년 반대 비율이 5.4%에 머물고 2011년에도 7.03%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치다. 특히 정관 변경이나 임원 선임 등과 같은 기업 경영 현안에 대한 반대가 많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주주이익을 대변하는 국민연금의 반대표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 조기 고갈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의결권 행사는 투자자금 수익률을 제고하는 중요한 운용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국민연금 행보에 대해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 총수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대기업들의 핵심 계열사들에 최대주주 혹은 2대주주로 올라있기 때문이다. 지배구조 문제까지 간여할까 노심초사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지난해 말 기준 222개다. 삼성전자(7%), 현대차(6.75%), SK하이닉스(9.10%), LG전자(9.44%) 등 주요 기업들의 지분율은 6%를 넘는다.
그렇다면 갑자기 국민연금 목소리가 커진 이유가 뭘까. 이와 관련 국민연금이 박근혜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본격적으로 보폭을 맞추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SK하이닉스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중립(섀도보팅)’ 의견을 내놓았음을 감안하면 1년만에 태도가 바뀌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위원장인 권종호 건국대 교수는 “경제민주화 등 다른 요인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주주가치에만 중점을 둔 결정”이라며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의결권 행사 강화에 앞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위법하지 않은 오너의 판단까지 경제민주화 바람에 휩쓸려 ‘잘못된’ 결정으로 비춰질 수 있단 설명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활동은 경영주체들간 손해를 덜 보기 위한 갈등의 연속”이라며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도록 의결권 반대 기준이 명확하고 투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