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부지에 공장을 짓는데 검토할 법만 50가지에 이르고, 설립절차도 사업계획, 건축허가, 환경관련허가 등 30가지에 달합니다. 그렇다고 그게 끝일까요? 오라가라 번번하게 불러대지만 정작 늦장 처리로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 게 현실입니다.”
중소 생활용품업체 P사는 위탁생산에서 자체생산으로 전환하기 위해 지난해 공장을 설립했다. 당초 목표는 2011년 안에 공장을 가동하는 것이었으나, 공장은 결국 해를 넘겨서야 착공할 수 있었고 매출은 예상치 못한 타격을 받았다. 기자와 만난 P사 대표는 “모 대기업은 사업장 신축을 신청한지 6시간 만에 허가가 떨어졌다는 데, 이건 한국의 중소기업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소기업인들이 생각하는 ‘손톱 밑 가시’는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기업들의 경영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각종 제약들이다.
중소기업의 상당수는 사무직 직원의 수가 적다. 한정된 자원안에서는 개발·생산·영업직을 우선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기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영세기업의 경우 통상 10명 미만의 근로자 수를 보유하고 있고 사무직은 1~2명에 불과하다. 이런 기업들에게 각종 행정절차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서류 작업은 고역일 수 밖에 없다.
공장 설립을 포함해 각종 신고나 정부 지원사업 신청 시 작성·제출해야 하는 서류는 수십가지에 이른다. 또 폐기물 처리는 관련 법률만 7개에 부수적 규제도 많다.
폴리에틸렌(PE)관 제조업체인 G사가 바로 이같은 경우다. 플라스틱 연합회와 협약을 맺어 재활용 의무율을 이행하며 폐기물 분담금을 부담하고 있지만, 과도한 서류 작업으로 업무에 차질을 빚고 있다. G사의 사무직 직원은 4명. 이들은 매월 출고량, 집계표, 상세내역서 등을 작성하고 월·분기·연 단위로 별도의 결산을 진행하고 있다. 양식을 달리한 중복서류로 행정업무가 과중해진 것이다. 파이프 길이, 종류별 폐기물 산정을 위한 관리 품목수는 무려 530개에 달한다.
연구개발(R&D) 지원금의 정산과정도 복잡하다. 1000만원 정도의 R&D 지원금을 받는 경우라도 자금을 예치 시 이자가 발생하면 해당 금액을 자금 지원처에 별도 반납해야 한다. 자금 사용 규정도 까다로워서 송금 때 발생하는 은행 수수료가 빌 경우 지출계획서부터 다시 제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성적인 ‘손톱 밑 가시’를 빼고 국민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친화형 국가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 2000년 기업의 애로점을 조사·처리하는 원 스톱 창구인 ‘친기업 패널’을 설립했다. 기업인, 언론인, 정부 고위 관료로 구성된 친기업 패널은 지금까지 2000여건에 이르는 규제 개선 건의를 청취했고 이 중 54%를 개선했다. 이에 더 나아가 2003년부터는 모든 행정기관을 대상으로 △규제 준수 비용 △규제에 대한 평가 △투명성 △고객 대응 △친기업 마인드로 구성된 ‘친기업 지수’를 평가하고 매년 결과를 공개한다.
캐나다 정부는 ‘관료주의(red tape) 철폐위원회’를 설립하고 중소기업들의 불필요한 서류작업이나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 및 기업가들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나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 또 스위스 정부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중소기업 포럼’을 통해 행정업무 간소화에 나서고 있다. 이곳에서는 중소기업에 불필요하게 요구되는 행정절차를 분석한 뒤 개선점을 유관 기관에 건의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중소기업청 기술개발과 조규중 과장은 “창업 1년 이내 초기기업을 지원하는 창업성장기술개발사업, 산학연공동기술개발사업, 제품공정개선기술개발사업의 경우, 올 해부터 작성 항목을 기존 39개에서 8개로 통폐합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