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 비해 금융업계의 대응은 뒤로 처지는 기색이 역력하다. 무엇이 업계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로 금융업계는 엔터프라이즈 IT 기술의 얼리어답터가 될 수 없다.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의 주요 업무는 고객의 자산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또한 각각의 트랜잭션은 거대한 현금 흐름을 동반하기도 한다. 따라서 조그만 시스템 장애가 금전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거나 회사의 신뢰에 큰 타격을 입힐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업종 특성상 금융업계는 충분히 검증이 완료된 기술을 선호하며 새로운 IT 기술에는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타 업계에서는 이미 일반화된 리눅스 플랫폼이나 자바프로그래밍이 증권업계에는 최근에야 도입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두 번째는 불황에 따른 신규 IT 투자의 어려움이다. 금융산업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인 침체기를 겪고 있다. 특히 증권업계는 지속적인 거래량 하락과 ELW시장 몰락에 따른 영향에 손익분기점을 넘기기도 힘든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는 2기 차세대 시스템 개발을 위한 IT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 과거 빅뱅 방식의 대규모 투자는 아니라 해도 기업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모바일 뱅킹, MTS(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 등 모바일 솔루션에 대한 투자도 병행돼야 한다. 업계 전체가 불황인 현재 상황에서 가시적인 실적이 없는 IT 부서 입장에서 이 이상의 요구를 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빅데이터 비즈니스 모델 발굴의 어려움이다. 비단 금융업계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겠지만 과거 CRM(고객관계관리), BI(Business Intelligence) 등 고객 분석을 위한 시스템 투자에서 기업들은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구체적이며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을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빅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모델은 외부 솔루션 벤더나 데이터 전문가(Data Scientist)가 쉽게 개발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상 업계에 대한 기반지식, 해당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 및 기업의 니즈를 가지고 가설을 세우고 수많은 데이터 분석 활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빅 데이터는 흔히 알고 있듯이 IT 트렌드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경영의 이슈이며 비즈니스의 이슈이다. 그렇기에 한순간의 유행으로 치부하기보다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고 차근차근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선두업체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본격적인 투자가 이뤄지는 금융업계가 오랜 관행에서 벗어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