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만 의사들의 수장인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사진)이 단단히 화가 났다. 노 회장은 17일 서울 이촌동 의협회관에서 기자와 만나 포괄수가제 시행 이후 보건복지부의 각종 대응에 대해 강력 비난했다.
이는 최근 손건익 복지부 차관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며 노 회장의 인격을 문제 삼은 발언을 겨냥한 것이다. 노 회장은 복지부가 의협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취임 100일을 맞이해 ‘포괄수가제 제2라운드’를 천명한 이후 처음 입을 연 노 회장의 의지는 결연했다.
지난 6월29일 의협은 긴급하지 않은 수술의 거부 방침을 철회하고 복지부에서 추진 중인 포괄수가제를 잠정 수용키로 했다. 하지만 포괄수가제 제2라운드를 선포하며 돌연 입장을 선회한 것에 대해 노 회장은 당시 정부측이 제시했던 조건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의협은 복지부에 기존에 있던 포괄수가제발전협의체를 포괄수가제 개선기획단으로 재편성 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복지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 발전협의체의 이름을 그대로 두고 안과, 이비인후과, 외과, 산부인과 등 4개 과로 구성된 분과위원회를 꾸렸다.
복지부는 위원 추천 과정에서 의협으로 공문을 발송하지 않고 각 과로 보냈다. 각 과에서 의협이 대표로 보내겠다고 하자 복지부는 각 과에서 직접 보내지 않으면 협의체 구성을 없던 일로 하겠다며 의협의 공문을 무시했다는 것이 노 회장의 주장이다.
또 노 회장은 임채민 복지부 장관에게 공식적으로 만남을 제의했고 임 장관 역시 이에 공식적으로 응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아래 직원들을 통해 안 만나겠다는 게 공식입장이라며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광복절에도 임 장관에게 이메일 서신을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다.
의협 회장과 임 장관의 공식적인 만남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임 장관이 17일 백성길 중소병원협회장과 만난 것에 대해 노 회장은 “유치하고 나쁘다”고 일축했다. 중소병원협회는 의협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대한병원협회의 산하단체로 의협이 포괄수가제 시행을 앞두고 수술 거부를 선언할 때 이에 동참하지 않았다.
노 회장은 “7개 경증 질환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553개 전체 질환으로 확대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라면서 “조건부 수용을 하면서 여론이 많이 돌아섰는데 실제 문제가 확인되면 일선 의사들의 동참률도 높아질 것으로 본다. 자료는 예전보다 더 많이 모였다”고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우리는 환자와 직접 접촉하는 사람들인데 건강 문제에 있어서 공식 의사단체인 의협이 하는 말을 거짓말이라고 몰아붙이는 정부의 태도를 보고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노 회장은 정부의 조직 중에서 가장 관료주의가 심한 곳이 복지부라고 비난했다. 그는 “임채민 장관이 복지부에 와서 단단히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 보건 정책은 굉장히 중요하면서 간단하지 않은데 이를 간단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 단체의 의견을 무시하면 오류가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
복지부와 감정싸움으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 노 회장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복지부도 그렇고 국민들도 의사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면서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사들의 책임이며 반성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의사들이 그동안 사회적 책임에 대해 무관심했기 때문에 제도가 악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과 언론, 정부가 의사들이 제기하는 의료계의 문제에 대해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의사들이 그동안 문제점을 노출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노 회장은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의사들은 사회적 비난이 겁이 나 문제점을 노출시키지 않았다”면서 “문제점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서 국민이 공감토록 해야 이후에 정부가 움직인다. 그것은 소수 의사들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