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와 한의계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천연물 신약 처방, 진단기기 사용권 등을 둘러싼 공방이 끝나지 않은 가운데 의사단체에서 몰카로 한의사들의 불법의료행위를 고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단순한 영역 싸움 수준을 넘어 상호비방과 고발, 법적 다툼으로까지 번지는 조짐이다. 이미 여러차례 충돌로 감정대립이 극심해진 탓에 어느 한 쪽이 물러서지 않는 한 이들의 갈등은 쉽게 봉합되기 어려워 보인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18일 자격증이 없는 직원에게 온열치료 등을 맡긴 혐의로 성동구의 한 한의원 원장 김모씨를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나서 검찰에 송치했다.
이번 경찰 수사는 최근 전국의사총연합으로부터 한의원 18곳과 약국 150여 곳이 의료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내용의 공익 신고를 받은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들을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고발 내용은 자격증이 없는 행정직원들이 물리치료, 뜸 시술 등을 하고 한의사들이 내시경이나 초음파 판독기기 등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전의총은 불법 의료 행위가 이뤄지는 현장을 몰래 촬영해 권익위에 증거자료로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한의사협회는 몰카 행위는 불법이라며 협회 차원의 논의를 진행해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뿐 아니다.‘한의학 영문 명칭 변경’ 논란도 양한방 간 갈등의 중심에 섰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6일 한의사협회의 영문명칭 사용중지 가처분신청과 영문명칭 사용중단 본안소송을 진행키로 했다. 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의 순서만 바꾼 동일한 영문사용으로 혼돈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지난 3월 한의사협회는 영문명칭을 ‘Korean Oriental Medicine(KOM)’에서 ‘Association Korean Medicine(AKOM)’으로 변경했다. 의사협회의 영문명칭 ‘Korean Medicine Association’의 순서만 바꾼 모습이다. 이에 대해 한의협은 “외국에서 ‘Oriental medicine’이란 단어는 인종차별적인 의미가 있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변경된 명칭은 ‘한국의 의학’이라는 의미에서 적절한 영문표기”라고 주장했다.
사실 양한방 간 밥그릇 싸움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의사협회가 포괄수가제 반대, 노조설립 추진 등 권리찾기에 목소리를 높이면서 이들의 갈등은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의협은 한방대책특별위원회라는 별도 조직까지 만들어 한의사들의 천연물 신약 처방, 현대적 의료기기 사용, 만성질환관리제 참여 등을 반대하고 있다. 잇다른 의협의 딴지걸기에 한의사들도 주도권 싸움에서 지지 않겠다며 날선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장동민 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의협은 근거 없는 궤변과 억지논리로 한의사와 한의약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무조건 폄훼하고 있다”며 “이런 행태가 계속된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