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러한 추세는 아직은 젊은층에만 국한되는 듯이 보인다. TV 프로그램의 한 설문조사에서 남편이 가장 이상적인 아내로 “밥 잘해주는 아내”를 들고 있다. 반면 아내들은 남편이 집에서 밥을 안 먹을수록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왜 이렇게 어긋나는 것일까?
자녀양육과 집안일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실은 돈 버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경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누구나 깨끗이 정돈된 집에서 편히 쉬면서 따뜻한 밥을 먹고 싶지만 막상 그러한 서비스에 대한 댓가는 충분치 않다.
◇무급노동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급노동(돈 버는 일)에 비해 무급노동(돈을 벌지 않는 일, 즉 집안일, 자원봉사 등)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유급노동은 노동의 결과를 화폐로 보상받게 되며, 화폐의 시장적 가치에 의해 소비가 가능하다. 또한 개인이 다양한 공식 조직에 속하게 됨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권력의 획득이 가능하다. 이에 비해 무급노동은 화폐로 보상받지 못함에 따라 원하는 물품과 서비스의 구매가 불가능하며, 개인과 사회의 관계도 보다 비공식적이고 제한적이다. 이에 따라 무급노동 수행자는 유급노동만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실생활에서 매우 절박한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직업이 없이 전적으로 집안일을 하는 전업주부가 교통사고 등으로 상해를 입었을 경우 손해보상의 기준은 그 도시의 최저 일용근로자의 임금 수준이다. 전업주부가 아무리 열심히 가족들을 위해 고품격 서비스를 제공하여도 현실적으로는 유급노동자의 최저 임금집단과 동일시되는 사회에서 누가 집안일에 전념할 수 있겠는가.
◇맞벌이 부부, 집안일은 여자의 몫=더욱 큰 문제점은 이와 같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가사노동을 여자들이 편중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위에서 집안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는 남자들이 우글댄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통계를 보면 그런 남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최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비맞벌이 남편 즉, 혼자 버는 남편의 가사노동 시간은 하루에 31분이다. 이에 비해 맞벌이를 하는 부부 중 남편의 하루 가사노동은 32분이다. 혼자 버는 남편보다 겨우 1분 많이 가사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맞벌이를 하고 있는 아내는 가사노동 3시간 28분, 시장노동 5시간 14분으로 가장 긴 시간 일을 하고 있다. 즉 여자가 직업을 갖고 있건, 아니건 여자는 3시간 이상의 집안일을 하고 있으며, 남편은 아내의 직업유무와 상관없이 거의 집안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통계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가사노동의 남녀별 할애 시간을 외국과 비교하면 매우 의미있는 사실이 드러난다. 지구상에서 남녀가 가장 평등하다는 스웨덴의 경우 남자의 하루 가사노동 시간은 1시간 57분로 여자에 비해 1시간 40분 적고, 미국 역시 남자가 하루 1시간 50분으로 여자에 비해 1시간 22분 적다. 우리나라가 3시간 25분, 일본이 3시간 35분 차이가 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대조적이다. 즉 남녀가 평등한 국가일수록 가사노동과 유급노동을 남녀가 서로 나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사분담, 가족 모두 함께해야=여자들이 밥하기 싫어하는 이유는 돈을 벌지 못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충분한 대접을 받지 못하며, 직장을 다니더라도 여전히 가사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임이 명백해진다. 원래 가사노동은 그 중요성으로 치자면 여타 노동보다 우위에 있다. 가족들이 삶을 영위함에 있어 아무도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자. 인간사회의 유지를 위해 가사노동은 반드시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편히 먹고 쉬고 자면서 감정 공유를 할 수 있는 가족이 필요한 것이다. 가사노동은 즉, 이러한 가족들의 생명을 살리는 노동으로 볼 수 있고 이러한 노동이 없다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가족을 유지하기 위한 해결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첫째 가사노동에 대한 재평가이다. 가사노동이 돈 버는 일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손해배상이나 이혼시 위자료 청구 등에서 가사노동을 충분히 평가해주어야 한다. 둘째, 가사노동에 가족이 모두 참여해야 한다. 가사는 주부라는 특정인만 하는 일이 아니다. 여자가 짊어진 가혹한 노동이 아니라, 모든 식구가 같이 즐기면서 참여하는 일이 될 때만이 가족 모두 행복해지는 진정한 남녀평등이 이루질 것이다. ‘혼자하면 고역, 같이하면 행복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기사협조=경기여성정보웹진 우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문유경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