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김대승 감독 "'후궁'의 진짜 주인공은 궁이다"

입력 2012-07-03 09:37 수정 2012-07-0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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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고이란 기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노출’이 너무 강하단다. 단순한 성애 영화 수준 그 이상 이하도 아닐 것이란 비아냥이 들려왔다. 감독이 누군지 봤다. 데뷔작의 깊은 인상 뒤 내놓는 작품마다 참패를 면치 못한 김대승 감독이다. 그를 두고 영화인들 사이에선 ‘국밥 감독’이란 말도 나왔다. 본의 아니게 손만 대면 ‘말아 먹는다’다고 생긴 말이다. 영화 ‘후궁 : 제왕의 첩’이 개봉을 앞둘 당시의 분위기다. 그리고 뚜껑이 열렸다.

‘후궁’은 사극의 외피 속에 인간의 감정 가장 밑바닥인 탐욕과 욕망의 날 것을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안에 빼곡히 채웠다. 적나라함의 정도를 넘어선 탐욕과 욕망의 실체는 충격적이었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설계한 모호한 시대적 배경의 미술은 ‘후궁’을 단순한 상업 영화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배우들의 연기도 매혹적이었다. 조여정의 몸을 사리지 않는 노출 연기는 결코 야하지 않았다. 김동욱의 광기는 절제의 미학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김민준은 그가 가진 마초적 감성을 걷어낸 채 눈빛 하나로 여러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김대승 감독이 진두지휘했다. 실제 감독 생활 마지막 작품으로 여기고 작업에 임했단다. 정말 그만 둘 생각이었다고. 3일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으로 누적 관객수 250만에 육박 중이다. 개봉 한 달간 박스 오피스 3위권 내를 유지하고 있다. 김대승 감독을 만났다. 그가 말하는 ‘후궁’의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를 공개한다.

-‘후궁’ 성적이 아주 좋다. 이례적이란 표현을 써도 될까.

▲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감독으로선 정말 감사하단 말도 모자랄 정도의 성적이다.

- 개인적으로 ‘후궁’의 팬이다. 더 큰 성적이 나오길 바란다.

▲ 너무 감사하다.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 성적은 좋지만, 호불호가 너무 극명하게 갈린다. 이유가 뭘까

▲ 재미있는 반응을 얘기해 볼까. 극장 무대 인사를 가면 영화 상영 전 인사를 하는 곳은 그다지 반응이 좋지 않다. 그런데 또 어떤 곳은 상영 뒤 인사를 하는 곳도 있다. 그런 곳은 기립 박수를 쳐 주시는 분도 있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 다시 말해 영화를 보고 온라인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타내지 않는 중장년층들이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2030세대의 젊은 층도 일부는 잘 봐주시는 것 같고. 그 사이에서 오는 갭이 호불호의 반응으로 나오는 것 아닐까.

▲사진 = 고이란 기자
- 반응이 좋은 쪽 시각으로 접근해보겠다. ‘후궁’의 미덕은 기존 사극의 전형성을 파괴했단 점을 우선 꼽고 싶다.

▲ 맞다. 그 점은 우선 ‘혈의 누’에서 시도해 봤다. 당시에는 사극들이 별 재미를 못보던 시기다. 그냥 편견이 좀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을 깨는 데 스릴러적인 요소가 많이 도움이 됐다. 단순히 역사를 그리는 사극이 아닌, 드라마의 진행을 통한 장르의 이종교배가 그 틀을 깨는데 도움이 됐다고 본다. 시나리오도 도움이 됐다. 쉽게 말해 시나리오 상에서 어떤 것들을 생략하고 어떤 것들을 살려서 스토리의 리듬감을 살리느냐의 문제를 고심했다. 모든 것을 세세하게 보여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은 당연히 다르다. 어떤 것을 생략해서 어떤 속도감을 만들 것이냐. ‘후궁’은 요즘에 맞는 속도감을 찾으려고 노력한 결과물이다.

- ‘후궁’의 미덕, 많은 것이 있지만 미술적인 부분이 가장 컸다.

▲ 솔직히 미술에 대한 불평을 가장 많이 들었다. 기존 사극의 그것과 전혀 다르게 그리지 않았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시도하려 했다. 화려한 단청과 금빛 옥좌 등등. 하지만 ‘후궁’의 주제는 그게 아니다. 궁 자체가 살아있는 생물이어야 했다. ‘도가니’이자 ‘지옥’으로 그려져야 옳았다. 기존 사극의 궁은 절대 ‘후궁’에선 존재하면 안됐다. 궁 안에 사는 사람들은 살아가고 죽어가고. 하지만 궁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 사람들을 지켜보는 하나의 시선이다. 세월의 흔적이 보여야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20대의 파릇한 청춘이 아닌, 삶과 죽음의 고비를 견뎌낸 괴물의 형상이어야 했다. 공간 자체가 주는 공포와 또 그 안에서 사는 인물들이 느끼는 두려움이 지속적으로 느껴지질 원했다. 결국 궁은 살아 있는 하나의 생명이어야 했다.

-의상을 보고 왜색 논란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었다.

▲ TV 사극에 기준을 두고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자. 당시 무슨 맞춤 기성복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왜색 논란? 좀 당황스러웠다. 조상경 의상 감독이 처음 미팅 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이거 똑같이 가실 거냐’라고. 그때 나 역시 ‘네?’라며 반문했는데, 잠시 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했다. 나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사극의 틀 안에 갇혀 있던 것이다. 철저하게 캐릭터와 고증을 통해 ‘후궁’ 속 캐릭터들의 의상을 잡아갔다. 그리고 나도 놀란 게 실제 고증으로도 ‘후궁’속 의상의 모습이 더 맞는다고 하더라. 극중 대비역을 맡은 박지영씨의 가체와 의상이 왜색 논란에서 가장 말이 많았다. 실제 사료를 보면 더 복잡하게 다양한 의상과 가체가 등장한다. 왜색 논란?(웃음). 조상경 의상감독이 정말 많은 가능성을 열어줬다. 너무 고맙다.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모든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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