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요일 오후 7시. 갑작스런 정전으로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리던 프로야구 넥센과 두산과의 경기가 중단됐다. 야구장은 순식간에 어둠으로 변했고, 중단된 경기는 1시간이 지나서야 재개됐다.
5시간 전 서울 관악구 봉천사거리. 항상 교통량이 많아 차량정체가 빈번한 이곳의 교통신호등 10여기가 한꺼번에 작동을 멈췄다. 버스와 승용차 등이 뒤엉키며 일대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차들은 교통경찰이 오기 전까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작년 9월15일 오후 사상 최초의 블랙아웃으로 암흑으로 변한 서울 곳곳의 모습을 다시 재현해 봤다. 예고도 없었고, 중요 공공시설과 일반 주택, 금융권 등을 가리지 않은 무차별적인 ‘단전’이 차분한 평일 오후를 일대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아찔한 블랙아웃의 공포는 올해 전력당국의 철저한 대비로 이어졌다. 평균 전력량이 5월에만 전년 대비 5~10% 늘어난 상황이라 대책 마련에 부산했다.
김황식 총리는 지난달 16일 ‘하계 전력수급 상황과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우리나라 전력공급 체계는 단일망으로 일단 전력이 부족해지면 전 국토에 `블랙 아웃', 즉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피해 규모는 가히 상상할 수조차 없을 것”이라면서 전 국민의 절전을 호소했다.
전력당국 수장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6월 블랙아웃’을 염려하는 메시지를 언론에 전하면서 전기요금 인상과 절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일부 원자력발전소가 멈춰서있고, 화력발전소 2곳도 화재로 점검중이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예년에 비해 소폭 증가해 수급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력수급 불균형은 정부가 자초한 결과다. 전력수요는 지난 10년간 80% 가량 폭증했지만 이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못했다. 전력 수요 예측도 제대로 못했다. 정부가 발표한 제3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06~2020년)은 2006~2011년 연평균 전력수요 증가율이 2.4%인 것으로 추정했지만 실제로는 4%가 넘었다.
그래도 우리는 일본에 비해 나은 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52기의 발전소가 올스톱한 일본은 기업과 가정에 살인적인 절전을 호소하며 근근히 버티고 있다. 원전 2~3기가 멈추면 당장이라도 순환정전에 들어갈 수도 있는 우리의 사정과 달리 그래도 일본은 52기가 멈췄지만 철저한 관리로 아직까지 대규모 정전 사태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기상청은 6월 기온이 예년보다 훨씬 높다고 예보했다. 작년보다 비의 양이 적고 건조한 날씨도 지속된다고 예측했다. 올 전기수요는 작년보다 크게 늘어날 것이 자명하다.
한여름을 코앞에 두고 최근 전력상황과 이런 현실을 자초한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내지 않는다면 매년 ‘블랙아웃’이라는 말을 달고 살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