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부터 약값이 내려갑니다!”
지난달 29일 청계천 광장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3시간여 동안 이곳에서는 ‘약 소비 국민인식 제고’를 위한 현장 캠페인이 벌어졌다. 보건복지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30여명의 직원들은 시민들에게 홍보 팸플릿과 물티슈 등을 나눠주며 오는 4월 시행예정인 약가인하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나선 것. 지나가는 시민들은 “약가가 인하되면 평균 14% 국민 부담이 줄어든다”는 얘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정부가 제약업계의 반발에도 약가인하를 강행하는 가장 큰 명분은 약제비 절감을 통한 국민부담 감소다. 지난해 8월 당시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도 일괄약가인하를 골자로 한 약가제도 개편안을 내놓으며 “약품비 거품을 제거하고 국민부담을 줄이려고 (이번 방안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번 약가인하로 환자 본인부담금이 연간 5000억원(평균 12.8%) 가량 줄어들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정부가 의약품 가격 통제에 나서겠다고 나선 연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약값이 비싸고 약품비 비중이 높으니 약가를 낮춰 약값의 거품을 빼고 국민의 부담을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건강보험 재정 적자를 줄여보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인구의 고령화, 만성질환자 급증으로 인한 의료비 증가와 고가 의료서비스 도입 등으로 건강보험재정 부담은 해마다 늘고 있다. 보험료 인상의 어려움과 낮은 정부지원 등도 건보재정 안전성의 위협요소로 지목된다.
◇“약값 깎아 건강재정 적자 보전하자” = 지난 2007년 2847억원 적자를 기록했던 건강보험 재정은 2008년 1조3667억원 흑자로 돌아서며 한숨 돌리는 듯했다. 하지만 2009년 32억원에 이어 2010년에는 1조3000억원 규모의 적자를 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한 ‘건강보험 중장기 재정전망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건보재정의 적자규모는 2013년 1조원대를 돌파하고 2015년 4조 7756억원, 2020년 15조 9155억원, 2030년 47조 7248억원으로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건보재정 적자문제는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건강보험제도의 미래 지속가능성을 훼손시켜 국민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김동헌 건강보험정책연구원 박사는 “건강보험재정의 지속가능성은 재정 안정성이 핵심”이라며 “이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재정수입을 늘리던가 현재의 건강보험 재정지출을 합리적으로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건보료 인상으로 인한 국민 부담을 고려해 보험료 부과 대상 확대, 비급여 항목 축소, 재원 다변화 등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한 갖가지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여기서 나온 묘책이 바로 약가인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약가결정의 권한을 가진 정부로서는 약값을 깎는 것이 건강보험 재정 적자를 보전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라며 “약품비가 건강보험 진료비의 30%나 차지한다는 점에서도 당장 절감 방안을 내놓아야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번 약가인하로 올해에만 6906억원의 건강보험재정 절감이 가능해졌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올해 건강보험료 인상률을 전년(5.9%)에 비해 낮은 2.8%로 정했다. 제약사들의 소송으로 약가인하 시기가 조금이라도 지연되면 건강보험재정에 적잖은 구멍이 생긴다는 얘기다. 복지부가 약가인하를 강행하는 배경이 건보재정 보전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