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은 위기와 함께 다닌다. 모건가 역시 이 같은 호사다마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국제적인 금융가문으로 100년이 넘도록 세계 2세기 가가이 돈 줄의 패권을 쥐어온 만큼 그 뒤에는 수많은 루머와 추측이 끊임없이 꼬리처럼 따라 붙는다.
모건가는 미국 현대사에서 산업계의 대부이자 제국 록펠러가와 큰 인연을 맺고 있다.
두 명문가의 인연은 19세기 남북전쟁부터 시작됐다. 금융계와 산업계를 지배하기 전 두 예비 명문가가 전쟁터 뒤에서 군수물자 운송과 판매에 참여해 엄청난 자본을 거둬들이며 세계 자본의 혈맥을 찾았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특히 4년간 계속된 전쟁에서 JP 모건은 금투기를 통해 떼돈을 벌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매점해 둔 금값을 폭등시켜 엄청난 이익을 취한 것이다.
19세기 말 금본위제가 공포되기 전 미국에 경제 위기가 불어 닥쳐 미 정부의 금이 바닥이 나자 모건가는 다른 금융재벌들과 공조, 정부에 금을 제공한다.
모건가는 위기에 처한 정부를 돕는 대신 재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금융계를 독점할 수 있었다. 미국 금권 정치의 상징도 모건과 록펠러로 대표된다.
모건가는 자동차 명문가 포드가와 록펠러가를 비롯한 당시 최대 기업들이 나치 정권에 3200만달러를 지원했을 당시 돈줄을 댄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제 1권력의 작가 히로세 다카시는 저서에서 "록펠러와 모건의 힘은 기업과 경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두 가문이 재계 정계 뿐 아니라 군사와 문화까지 장악하고 있으며 막대한 자본력으로 미국사를 비록해 세계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세계 2차대전 당시 모건과 록펠러 가문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참전을 유도했다며 “두 가문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도록 부추겨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고 언급했다.
모건가는 명예의 상징인 노벨상에도 자본의 씨를 뿌렸다. 미국 대통령, 정부 관계자들에게 노벨상이 돌아간 배경에는 모건가와 록펠러의 돈줄이 작용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케네디의 암살에도 금융제국과 산업제국은 자유롭지 못하다. 1962년 두 명문가의 연합계열인 US스틸과 베들레헴스틸이 철강 가격을 올리자 케네디 대통령이 이들 기업에 대한 주문을 중지하면서 암살의 배후에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현대사의 자본주의를 받쳐온 금융재벌이 정계를 뒤흔들 만큼 막강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