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으로서 한 정당의 당수와 총리가 유력했던 전도양양한 정치인이 단돈 34만원의 공적 자금을 개인 용도로 유용해 정치생명이 끝난 사건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신뢰수준이 높은 나라들로 알려진 노르딕 5개 국가(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에 속하는 스웨덴의 모나 살린 의원의 이야기다.
그녀는 지난 1995년 9월 당시 38세의 나이에 차기 사민당 당수와 총리가 유력했으나 전혀 뜻밖의 사건으로 당수도 총리직도 포기해야 했다. 스톡홀름의 한 대형 슈퍼마켓에서 조카에게 줄 기저귀와 초콜릿, 식료품 등 생필품 2000크로나(약 34만원) 어치를 공적인 카드를 이용해 구입한 게 화근이었다.
그녀는 이후 자신의 돈으로 카드대금을 메워 넣은 뒤 '매월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기록, 일반에 공개한다'는 정보공개 원칙에 따라 이를 신고했으나 정부·국민의 돈과 개인 돈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언론들의 강한 비판에 10여 년간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있어야 했다.
사회와 제도적으로 높은 신뢰수준을 유지하는 기초 여건이 마련된 상황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상황은 이와 전혀 다르다. 총리와 장관 등 고위 공직 후보자들에게는 마치 통과의례라도 되는 듯 누구랄 것 없이 각종 비리 의혹들이 잇따르고 그것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음에도 큰(?) 잘못이 아니며 ‘당시에는 관행이었다’ 또는 ‘사회 분위기가 그랬다’는 명분에 휩쓸려 유야무야 넘어가기 일쑤다.
또한 다른 선진국 같았으면 파산지경에 이르렀어야 할 수천억원 규모의 분식회계 등 불법적인 일을 자행해도 '특사'라는 명목 아래 약간의 고생 아닌 고생을 치른 후 자유로운 몸이 돼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펼친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진입을 넘어 초일류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물적·인적 자본뿐만 아니라 신뢰와 같은 사회적 자본의 축적이 필요하고, 이를 높이기 위해서는 부패 추방과 재산권 보호 및 공정하고 일관된 법 집행이 뒤따라야 한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싱가포르가 장기에 걸친 반부패정책 추진으로 부패가 낮은 사회를 만든 것처럼 부패방지를 위한 제도 강화가 필요하고, 각 사회 부분별 부패를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해 정부 규제의 대폭적인 축소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정부와 법원은 일관성 있고 공정하게 법을 적용하는 한편 국회는 적시에 국민의 요구를 입법화해야 하고, 재산권의 적시 보호를 위해 사건처리 기간이 장기화 돼 가는 추세를 방지하기 위해 판사 정원의 확대 등 제도의 개혁도 선행되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