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대한산악연맹이 오은선(44) 씨의 히말라야 칸첸중가 등정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적지 않은 후폭풍이 몰아칠 것으로 감지되고 있다.
초미의 관심의 대상이 될 부분은 여성으로서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오 씨의 기록이다.
오 씨의 칸첸중가 등정이 사실이 아니라면 여성 최초 완등 타이틀을 에두르네 파사반(37.스페인)에게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유력 산악단체인 연맹이 부정적 견해를 밝힘에 따라 해외에서도 한동안 잠잠하던 의혹 제기가 더 거세지는 것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 산악연맹 이례적 입장 표명 =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산악계에서도 산악단체가 개인 등정자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산악인의 정신과 자부심을 지키는 차원에서 정상에 대한 일정한 증거만 있다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관례가 정착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맹은 이례적으로 국내 칸첸중가 등정자 7명의 의견을 청취해 오 씨의 등정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성명을 냈다. 잇따른 의혹 제기에 시달리다가 14좌 완등을 인정하던 입장을 갑자기 바꾼 것이다.
연맹 관계자는 "김재수 씨와 고미영 씨, 파사반이 작년 5월 오 씨가 칸첸중가를 다녀온 직후에 이견을 제시했다"며 "이에 오 씨가 정상에 올랐다는 증거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연맹은 산악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신력이 있는 산악단체에서 객관적 사실을 검증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 확실한 증거·반증도 없는 상황 = 오 씨가 칸첸중가를 등정하지 않았다는 정황만큼이나 올랐을 수 있다는 정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논란만 공회전할 가능성이 크다. 대한산악연맹은 오 씨의 등정 사진에 드러난 바위 등 특별한 지형이 정상 부근에서는 목격되지 않았다는 등정자들의 진술을 등정을 부정하는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오 씨는 "같은 날 같은 시기에 갔어도 정상의 사진이 다를 수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괜찮다, 저런 경우에서는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오 씨는 칸첸중가 등정사진은 정상에서 5∼10m를 내려와서 찍은 사진이며 악천후로 시야가 좋지 않을 때는 이런 방식의 인증 사진이 관례로 인정된다고 말하고 있다.
대한산악연맹은 등정 사진 이외의 다른 자료도 검토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잘못된 것인지 밝혀달라는 요청에는 함구했다. 최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을 통해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는 종합적으로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참고만 했다고 밝혔다.
등정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의혹, 정상 부근에 산소통을 목격하지 못했다는 의혹, 수원대 산악회 깃발이 정상 아래 20∼30m 지점에서 고정된 채 발견됐다는 의혹 등에 대해서도 오 씨는 이미 지난 12월부터 반대 증거를 대고 있다.
◇입장 중립성 문제 제기..갈등 불가피 = 연맹의 입장 표명으로 국내 산악인들 사이의 갈등의 골도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회의에 참석한 한 산악인은 "회원들 사이에 알력이 없는 단체가 없듯이 이번 사태에도 갈등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며 "오은선 씨 스스로 완벽하게 등정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의혹을 제기한 이들이 당시 오 씨와 치열한 14좌 경쟁을 펼치던 산악인들이라서 흠집을 내기 위한 저의가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 때문에 본인의 주장과 일정 형식을 갖춘 증명사진이 있으면 산악인의 명예를 생각해 등정을 인정하는 관례가 깨졌다는 게 산악계 안팎의 얘기다.
오 씨는 칸첸중가 등정자 회의는 사실상 연맹 이사회와 다름없었다는 점을 들어 중립성에 의문이 있다고 주장했다. 회의 참석자 6명 가운데 4명이 연맹의 올해 이사로 등재돼 있다. 의혹을 제기해온 이사 2명은 현재 오 씨의 소속사와 경쟁을 치르는 다른 업체에 소속돼 활동하는 산악인이다.
하지만 연맹은 "이런 종류의 주장은 사실 관계를 흐리는 요인일 뿐"이라며 "`여자이기 때문에, 업체의 세력 싸움 때문에, 산악단체간 갈등 때문에' 같은 말들은 본질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 14좌 완등기록 어떻게 되나 = 산악인들은 14좌 완등이라는 기록은 오 씨가 스스로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등정 여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기관이 없는 데다 뚜렷한 증거도 없기 때문에 양심 선언과 더불어 재도전이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나온다.
엘리자베스 홀리 여사가 사실상 공인기관으로 여겨지지만 그 또한 자신은 기록자에 불과하다면 한국 내의 입장이 정리되면 기록하도록 통보해달라는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오 씨는 산악인으로서 자신의 명예를 걸고 등정한 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하고 있어 사태가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5월 국내 산악인에 의해 이견이 제기된 이후 해외 경쟁자와 언론의 의혹이 크게 불거졌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연맹의 입장 발표에 따른 해외의 의심도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사실 관계를 둘러싼 국내외의 주장만 난무할 가능성 때문에 '14좌 완등'의 기록 또한 여론이 악화된다면 홀리 여사의 기록대로 `논란중'으로 보류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