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3년 사이 막걸리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대기업들의 막걸리시장 진입시도가 늘어나자 중소 막걸리제조업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국 20여개 막걸리 업체들은 최근 '한국막걸리제조자협회'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대기업이 진출하면 전통주의 상징인 막걸리 시장이 통째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했다.
이 단체에는 회장과 사무국장을 맡은 이동주조와 (주)우리술을 비롯해 배혜정누룩도가(경기), 양양주조(강원), 세종탁주(충청), 갓바위(영남), 옥천주조(호남) 등 지역을 대표하는 막걸리 제조업체들이 참여했다.
제조자협회의 목적은 두 가지다. 대기업의 막걸리 제조시장 진출로 인한 막걸리의 정통성 훼손을 막고 중소업체가 직접 품질개선과 해외시장 진출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박성기 사무국장(우리술 대표)은 "대기업이 들어와 대량생산을 하게 되면 막걸리도 소주처럼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며 "결국 막걸리의 전통적인 맛은 사라지고 결국 막걸리 시장이 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통만 해주겠다는 대기업=최근 오리온과 CJ제일제당은 중소업체를 인수하거나 유통대행등의 방식으로 막걸리 시장에 진출했다.
CJ제일제당은 지난달 전주주조, 용두산조은술(충북 제천), 우포의 아침(경남 창녕)등 3개 지역 막걸리 업체와 유통대행 계약을 체결했다.
오리온도 참살이탁주 지분 60%를 인수하는 등 막걸리 시장 진출을 위한 본격 투자에 나섰고 식품기업인 농심과 샘표식품도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사업목적에 '주류판매업'을 추가했다.
이밖에 와인업체인 디아지오코리아등도 막걸리 시장 진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기존 소주·맥주 회사들도 가능군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대기업의 시장진입이 중소업체의 낡은 유통방식과 열악한 환경·위생관리등을 개선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또 하나같이 직접 제조에 참여하지는 않고 중소업체들의 취약점인 유통과 품질관리를 도와 막걸리 품질향상을 선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중소업계의 생각은 다르다. 이동주조 하명희 대표는 "최근 막걸리 시장에 진출한 한 대기업은 이미 제품 개발까지 다 해놨다는 소문도 있다"고 말했다. 제조에까지 뛰어드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박성기 우리술 대표는 "중소 막걸리 업체와 상생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엔 이 시장도 먹겠다는 속셈"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진출하면 막걸리는 사라진다=중소업체들이 대기업의 막걸리 제조시장에 직접 진출할 경우 가장 우려하는 것은 막걸리의 전통적인 맛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막걸리의 가장 큰 장점은 지역 마다 다 맛이 다르다는 데 있다. 발효주가 갖는 걸죽한 맛은 한 가지지만 각 지역의 물과 쌀, 특산물을 적절하게 혼합한 막걸리의 맛은 모방을 할 수 없다.
박 대표는 "전국에 600여개의 막걸리 제조업체가 있는데 쓰이는 쌀과 물, 특산물 등에 따라 맛이 다 다른 게 막걸리가 갖는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기업은 대량생산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런 전통적인 맛은 기대하기 힘들다. 대량생산을 하게 되면 생산공정이 획일화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와 업계가 추진하고 있는 막걸리의 세계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사케나 프랑스 와인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된데는 상품의 다양성과 소규모 양조장을 보호 육성했기 때문인데 우리는 오히려 획일화의 길로 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 대표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수출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대기업이 고맙겠지만 결국 막걸리 시장은 이로 인해 세계 시장에서 실패할 확률이 더 크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일본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지난 1992년부터 일본에 막걸리를 수출하고 있는 이동주조는 지난 3월 진출한 진로에 의해 빠르게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다.
하명희 이동주조 대표는 "진로가 거대 유통망으로 시장을 확대한 공로가 있지만 일본인은 더 이상 막걸리의 참맛을 볼 수 없게 됐다"며 "이들은 달고 신 진로의 제품이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한국의 전통 막걸리로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 대표는 "대기업이 막걸리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아니다"며 "대기업의 거대 유통망을 활용할 경우 분명 중소 업체에도 득이 되겠지만 대기업의 역할은 거기서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