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능욕’ 17번이나 합성한 女 나체사진…“무죄” 왜?

입력 2024-01-06 05:30 수정 2024-01-0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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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2017년 범행 때 처벌근거 없어…옛 법상 非범죄”

2020년에야 성폭력특별법 형벌조항 신설

“합성사진은 컴퓨터파일…‘음란 물건’ 아냐”
영장 없이 휴대전화 포렌식…위법수집증거
경찰, 적법절차 무시해 증거 오염되기까지
파기환송심서 명예훼손 뺀 전부 무죄 유력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들의 나체 합성 사진을 17차례나 만든 대학생에게 무죄가 확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서울 소재 유명 대학을 다니던 남학생은 특히 지하철과 강의실 등에서 6차례 여성 신체를 불법 촬영한 혐의도 받았지만, 역시 무죄로 결론 날 것으로 전망된다.

컴퓨터 합성 기술이 발달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범죄 유형으로 이른바 ‘지인 능욕’이라고 불린 범행을 저지른 당시, 문제가 된 대학생이 형사 처벌받을 수 있는 근거 조항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어떠한 행위가 범죄로 되고 그 범죄에 대해 어떤 처벌을 내릴 것인가는 미리 성문(成文)의 법률에 규정돼 있어야 한다는 ‘죄형 법정주의’는 형법 대원칙이다.

▲ 해당 이미지는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계 없음.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 해당 이미지는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계 없음.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지난달 14일 음화제조 교사‧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 씨는 2017년 4월부터 11월까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신원 불상 자에게 여성 지인들의 얼굴이 합성된 나체 사진을 17차례 제작 의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의뢰 과정에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 지하철과 강의실 등에서 6차례 여성들의 신체 일부를 불법 촬영한 혐의까지 받았다.

軍입대한 가해자…군사법원 1‧2심, 징역형 선고

범행은 A 씨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리면서 들통 났다. 습득자가 주인을 찾기 위해 휴대전화를 열었다가 합성 사진을 확인해 이를 피해자에게 건넸고, 피해자는 2017년 12월 경찰에 휴대전화를 제출하면서 A 씨를 고소했다.

당초 이 사건은 경찰이 수사했으나 A 씨가 군에 입대하면서 군 검찰 소관으로 넘어갔다. 군사법원은 대부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1‧2심 모두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형법 제244조는 문서, 도화, 필름 등 ‘음란한 물건’을 제조하는 행위를 금지하는데 기존 대법원 판례는 A 씨가 제작한 합성 사진과 같은 컴퓨터 파일을 음란한 물건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2020년 3월에서야 비로소 성폭력처벌법 14조의 2(허위영상물 등의 반포 등) 조항이 신설돼 처벌할 수 있게 됐지만, 신법이 생기기 전 벌어진 A 씨 범행에는 적용하지 못한다. 죄형 법정주의에서 파생된 ‘형벌 불소급의 원칙’ 때문이다.

이에 대법원은 음화제조 교사죄로 A 씨를 처벌할 수 없다고 보고 원심의 유죄 판결을 파기했다.

▲ 서울 서초동 대법원. (뉴시스)
▲ 서울 서초동 대법원. (뉴시스)

헌법‧형소법 무시한 경찰…大法, 구속취소 결정→석방

불법 촬영 혐의 또한 사실상 처벌이 어렵게 됐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A 씨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별도의 압수‧수색영장 없이 피해자가 제출한 A 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하고 전자정보를 추출했다.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포렌식 과정에 있어 A 씨의 참여 기회를 보장해야 했으나, 수사기관은 헌법상 기본권인 ‘압수‧수색 적법절차’를 무시했다.

사건이 군 검찰로 넘어간 뒤 2018년 11월 군 검사가 뒤늦게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불법 촬영 사진을 다시 수집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 대법원 입구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연합뉴스)
▲ 대법원 입구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연합뉴스)

우리 형사소송법 308조의 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증거능력을 부여하지 않는 ‘위법수집 증거 배제 법칙’은 대한민국 형사소송법 체계로 형사소송법전에는 2007년 명문화됐다.

‘독이 있는 나무에서 나는 열매는 곧 독이 있는 열매’라는 논리적 추론을 따르는 독수독과(毒樹毒果)란 ‘위법한 수사방법으로 얻은 증거가 있다면, 그 증거에서 파생하는 증거 역시 위법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이론이다. 이는 인권과 정의를 수호하고 수사당국의 공권력 남용과 폭주를 막기 위한 장치다. 무죄 추정의 원칙과 일맥상통한다.

A 씨 재판은 서울고법에서 재차 열린다. 새로운 증거가 제출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A 씨는 피해자 한 명에 관한 명예훼손 혐의로만 처벌받고, 나머지 혐의는 전부 무죄가 선고될 것이 유력해 보인다.

A 씨는 해당 사건이 사회적으로 크게 물의를 빚자 학교에서 퇴학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구속 상태로 재판받다 2020년 4월 대법원의 직권 구속 취소 결정으로 석방됐다.

박일경 기자 e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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