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본격적으로 폭증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생산 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기존에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에 미국 팹리스 기업 AMD가 참전을 알리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객사 잡기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HBM 공급량을 대폭 확대하기 위해 충남 천안·온양 패키징 라인에 신규 라인 증설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내년 3분기 내 라인 설치를 완료하고, 생산을 시작한다.
삼성전자의 신규 라인 증설은 향후 대폭 늘어날 HBM 수요에 대처하기 위한 선제 조치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성능을 높인 메모리 반도체다. 최근 AI 기술 발달로 많은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게 중요해졌는데, 시장에선 HBM이 그 해결책으로 주목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내년 HBM 공급량을 업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올해보다 2.5배 이상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시설 투자 금액도 대폭 확대했다. 삼성전자의 올해 전체 시설 투자 금액은 53조7000억 원으로 예상된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로, 지난해 53조1000억 원 대비 6000억 원 올랐다.
SK하이닉스도 충북 청주 공장 M15에 HBM 생산 라인을 증설하고 있다. 그간 M15는 낸드 플래시 전담 사업장이었다. 기존 HBM 생산 거점이던 경기 이천이 포화에 이르자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다.
현재 HBM 양산에 필요한 실리콘관통전극(TSV) 본딩, 웨이퍼서포팅시스템(WSS) 등의 장비 발주를 시작했다. 인근 M15X 공장도 2025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데 이곳에서도 HBM을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AMD가 최근 최신 AI 반도체 출시를 알리면서 우리 기업들의 HBM 공급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그동안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했던 엔비디아와 경쟁할 새로운 고객이 생긴 것이다.
AMD는 앞서 6일 '어드밴싱 AI' 행사에서 최신 AI 반도체 '인스팅트 MI300X' 시리즈인 ‘MI300X’와 ‘MI300A’를 공개했다. 이들 칩 하나에는 4~8개 가량의 HBM이 탑재된다. 업계에 따르면 AMD 신제품에 들어가는 HBM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량 공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적인 시장 확대를 위한 준비도 한창이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AI 인프라(Infra)’ 조직을 신설하고, 그 산하에 HBM 전담 부서 ‘HBM 비즈니스(Business)’를 신설했다. 그간 HBM과 관련해서 조직과 기능이 여러 부문으로 흩어져 있던 조직을 하나로 결집, 효율을 높였다. HBM을 포함한 메모리 영업 마케팅 전담 조직 ‘GSM’(Global Sales & Marketing)도 함께 편제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HBM 시장은 2025년까지 연평균 4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46~49%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면서 사실상 우리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