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금융당국 수장과의 회동에서 상생금융안에 대한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하지 못한 것은 당국의 ‘눈높이’에 무거운 압박을 받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상반기 각각 수천억원 이상의 상생금융 지원안을 발표한 데 이어 또 다시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의 ‘종 노릇’ 발언 이후 하나와 신한은행이 각각 1000억 원 규모의 추가 안을 발표했지만 금융당국이 충분치 않다고 밝히면서다. ‘새롭고’ ‘충분한’ 실효성 있는 방안이자 정부가 ‘체감’할 수 있는 내용물을 내놓아야 하는만큼 금융권의 고심이 얼마나 컸는지 알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구체적인 주문 대신 ‘사회적 책임’ 같은 애매한 단어가 등장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일명 ‘횡재세(초과이익환수 법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도 국회가 요구하는 수위를 금융지주사들이 인지할 것이고 업계 의지에 달렸다고 압박했다. 전문가들은 은행의 사회적 책임 확대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이 같은 팔 비틀기 방식은 결국 또 다른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날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5대 금융(KB·신한·하나·우리·NH농협), 3대 지방금융(BNK·DGB·JB) 지주회장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늘은 첫 번째 회의로, 규모, 대상에 대한 논의 없이 기본방향만 얘기했다”면서 “올해 은행 수익이 늘어났으니 이를 감안해서 지원하는데 정리가 되면 은행연합회 중심으로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결국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없이 또 다시 상생금융 책임을 업권에 떠넘긴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실상 당국이‘백지수표’를 요구한 것이라는 격한 반응도 나왔다. 금융 당국의 상생금융 압박이 새로운 형태의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이 커지면서 이를 감안한 수위 조절이라는 시각도 있다
A은행 관계자는 “고금리, 고물가로 인한 은행의 역대급 이자이익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 국민들의 부담 증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통감하고 상생을 위해 전 금융권이 노력해야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면서도 “주기적으로 금융을 악의 축으로 만들고 새로울 것 없는 상생금융안을 만들게 하는 것은 포퓰리즘”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어 “당국도 정확한 가이드도 없이 모든 부담과 역할을 금융사에게 지우는 것뿐만 아니라 횡재세 법안 발의 논의 상황 전달과 같이 강한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은 금융을 정쟁의 도구로 만드는 지나친 횡포”라고 덧붙였다.
B은행 관계자는 “새로운 상생금융안이 없는 상황에서 가이드 없이 모든 부담과 역할을 금융사에게 지우는 것뿐만 아니라 횡재세 법안 발의 논의 상황 전달과 같이 강한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이 상당한 부담으로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금융권을 향한 상생금융 압박은 1년 내내 계속됐다. 연초 윤 대통령의 은행의 ‘공공재’ ‘돈잔치’ 발언을 도화선으로 금융권에 대한 압박이 본격화 됐다. 올해 3월 은행연합회는 ‘3년간 취약계층 10조 원 지원’이라고 제시했으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상반기 은행권을 시작으로 카드, 보험업계와의 릴레이 면담을 통해 1조 원 규모의 상생금융 지원책을 약속받았다. 상생안을 내놨지만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힌 은행이 이미지를 쇄신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0월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은행 종노릇’ 발언이 공개되면서 금융권에 상생금융 시즌2를 예고했다.
21일 정치권은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횡재세’에 대해 첫 논의를 시작한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4일 금융회사가 이자수익으로 거둔 초과이익(수익)의 최대 40%를 부담금으로 징수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됐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은행권은 올해 최대 1조9000억 원 규모의 분담금을 내야 하고 초과이익이 발생하는 해마다 분담금 부담이 생긴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상생(win win)취지에 맞게 은행이익 창출의 기여고객대상으로 이익환원을 위한 구체적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