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배의 금융의 창] ‘공약가계부’ 재도입 검토하길

입력 2023-11-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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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대비 정부부채 이미 과다한데
총선 앞두고 선심성空約 난무예상
미래위해 튼실한 국가재정 절박해

얼마 전 기획재정부는 2023년 7월 기준 중앙정부 채무가 1097조8000억 원으로 이미 지난해 결산 채무보다 64조4000억 원 늘어난 것을 발표하였다. 이번 정부가 줄곧 긴축재정을 천명하고는 있지만 경기 부진, 부동산시장 침체 등으로 세수가 따르지 않고, 고금리로 국채 이자가 늘어난 것이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

내년에만 30조 원에 육박하는 국채 이자를 비롯한 의무 지출과 삭감 불가능한 경직성 경비 등을 고려하면 재정 여력은 넉넉하지 못하다. 이에 따라 재정정책의 경기 대응력이 약화할 것은 물론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GDP의 3% 이내로 제한하고자 하는 재정준칙의 법제화도 당분간 어려울 수 있다.

우리나라 GDP 대비 일반정부 채무(D2,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회계·기금 부채에다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를 포함) 비율은 코로나 기간 빠르게 상승하면서 2022년 말 현재 54.3%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도 일본, 그리스, 이탈리아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고, 미국과 여타 유럽 국가들보다도 한참 여유로운 수치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기축통화국이거나 기축통화를 사용하는 준기축통화국으로 한국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통화 자체가 ‘경제 방파제’ 역할을 하는 이들 국가와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IMF는 10월 재정점검 보고서(Fiscal Monitor)에서 2028년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 비율이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11개 비기축통화국 가운데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을 것으로 관측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증가 속도가 비기축통화국 중에 가장 빠르다고 경고하고 있다.

내년 4·10 총선이 5개월 정도 남았다. 그동안 선거철만 되면 후보들은 국민에게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였다. 진보 보수 진영을 가리지 않고 공약 상당수가 사전에 관계기관과의 협의, 전문가와의 의견수렴, 안정된 재원 확보 계획 등이 부족한 채 정치적 의도에서 급하게 도입되었다. 선심성, 장밋빛 하드웨어적 토목공사 공약이 난무하고, 구체적 분석 없이 4차산업 육성이나 숫자 늘리기식 청년일자리 창출 등의 공약도 경쟁적으로 쏟아내었다. 우리나라의 재정 상황이 악화하는 데에는 이러한 복지성 포퓰리즘적 공약(空約)도 한몫하였다.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서도 정치권의 포퓰리즘 공약이나 입법이 기승을 부릴 것으로 우려된다.

냉정히 말하자면 우리는 국가의 미래를 위하여 가능한 한 국가 재정을 아껴야 할 절박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 현재 국내 경기 회복세는 뚜렷하지 않고, 오히려 디플레이션에 가까운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잠재성장률 하락 속에서 초고령화 초저출산 추세가 빠르게 진행되어 써야 할 돈은 점점 늘어나고 생산능력은 점점 약화할 수밖에 없다. 지금 상황이 계속된다면 세입은 줄고, 세출만 늘어나 재정건전성 악화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아르헨티나, 그리스, 베네수엘라 등 재정 포퓰리즘 나라들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재정건전성 악화 요인을 파악하여 포퓰리즘적 지출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포퓰리즘 정책들을 명확히 구분하고, 공약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임기 중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재정건전성 변화에 대해서도 냉철히 평가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과거 일시적으로 도입되었던 모든 공약에 드는 재원을 계산한 뒤 이를 조달하는 방안과 함께 제시하도록 하는 이른바 ‘공약가계부’와 같은 제도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4차 산업 육성이나 일자리 창출 등과 같은 미래 세대를 위한 공약 등은 우리의 상황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 미래와 관계되는 중요한 정책들은 총선 이후 정치적인 부담 없이 국민의 공감대를 찾아 튼튼하고 실효성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쌓아온 경제성장의 몫이 적정한 재정정책을 통하여 공평성을 높일 수 있는 합리적 복지도 절실히 요구된다. 실제로 OECD 국가 간 공공사회복지지출 지표를 보면 한국은 최하 수준이다. 갈수록 재정 여력이 약화하고 있지만 정책적 고민을 통해 사회통합과 소득·부의 불평등 완화를 꾀해 한국 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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