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논의 통해 삶의 의미와 의지 다져야”
공공 형식의 ‘작은 장례’ 사실상 종료되는 게 현실
24일 장례업계에 따르면 보람상조는 상조 산업을 이끌어갈 트렌드 키워드로 S·T·O·R·M을 제시했다. S·T·O·R·M은 △1인 가구의 증가(Single-person households increasing)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고객 소통 강화(Talk to consumer) △온라인 추모 증가(Online memorial space) △온라인몰 리워드 프로그램 강화(Reward payment) △추모품의 다양화(Memorial jewllery)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이는 장례 절차를 간소화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치르는 ‘작은 장례’가 장례업계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 장례문화에서 작은 장례 비중은 아직 미미하지만, 개인의 인식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장례문화에 관한 본지 설문조사(19일자 4면 참조)에서 응답자 1000명 중 66%가 “전통적 삼일장 문화가 바람직하다”고 한 반면, 본인 장례는 1~2일을 희망한다는 응답자가 2명 중 한 명 꼴이었다.
작은 장례서비스 전문업체 ‘채비’의 전승욱 부장은 7월 10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채비의 ‘추모식 장례’는 일상에서 다시 떠올리기 힘든 고인의 생애와 사랑의 기억을 잘 정돈해서 좋은 관계로 서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삼일장을 1일로 단축하고, 전문장례식장 빈소 대신 종교시설의 예배공간, 카페, 지역 공유공간 등을 이용하고, 음식을 자체 조달하면 조문객 대접을 풍성하게 하면서도 큰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채비’는 2010년부터 장례로 인한 고비용 부담을 덜고 작고 아름다운 장례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출범했다. 특히 채비는 장례절차, 장례용품, 봉안서비스 등 비용을 크게 줄였다. 일반 장례업체보다 서비스 이용료가 200만 원가량 저렴하다. 장례식은 고인을 진정으로 애도하고 유족들을 위로할 수 있는 ‘추모식’을 중심으로 치러진다.
전 부장은 “일례로 고령의 어머니가 임종할 것 같다면, 자녀 중 한 명이 찾아와 추모식 준비 상담을 진행한다”며 “사진을 모아서 추모 영상을 제작하고, 자녀 중 한 명이 어머니의 생애사를 작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인의 생애사, 추모 영상, 작별인사, 유품테이블 추억 나누기, 헌화 등의 순서로 치러지는 추모식은 오로지 고인을 알고, 유족과 조문객들의 상실을 위로하는 자리로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채비는 작은 장례뿐 아니라 채비 학교를 통해 삶과 죽음에 관해 공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전 부장은 “추모식 준비 과정, 유품 정리 등을 배울 수 있는 죽음과 장례에 관한 여러 강의를 열고 있다”며 “우리나라만큼 죽음과 일상을 분리하는 경우는 드문데, 장례와 추모공간의 주거 근접과 함께 죽음을 항상 이야기하면서 삶의 의미와 의지를 뚜렷이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작은 장례’에 대한 공감이 늘고 있지만 안착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개인 차원에선 작은 장례를 선호해도,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여전히 정통적 장례방식을 ‘고인에 대한 예의’로 보고 있어서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작은 장례문화’ 사업을 주도했던 서울 서대문구는 올해부터 사업 종료 수순을 밟고 있다. 서대문구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총 38건의 작은 장례식을 지원했다. 서대문구가 관내 동신병원과 협약을 맺어 진행하는 작은 장례식은 삼일장 기준 상조비용이 140만 원 이내다. 장례식장 대여료도 10% 할인한다. 여기에 구는 작은 장례식 관련 강의를 진행하고, 구민들을 대상으로 작은 장례 서약서을 쓰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대대적으로 사업을 홍보해왔다.
이런 노력에도 이용률은 저조하다. 구의 작은 장례를 이용한 인원은 2016년 0명, 2017년 3명, 2018년 10명, 2019년 15명, 2020년 1명, 2021년 5명이었고, 지난해에도 4명에 머물렀다. 이에 작은 장례식 지원 예산도 2016년 1250만 원에서 2018년 690만 원, 2021년 170만 원으로 줄었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작은 장례 사업이 실용성이 높았던 사업이 아니어서 올해부터는 중단하게 됐다”며 “다만 여전히 동신병원이랑 협력을 맺고 있어 병원 측에서 작은 장례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구 차원에서는 공식적으로 홍보하거나 새로운 사업으로 할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장례를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변하지 않으면, 일방적인 공급 확대는 의미가 없다. 서대문구에서 작은 장례 사업을 담당했던 김시우 지역경제과 주무관은 “처음에는 작은 장례 문화를 일반인에게 확산할 수 있는 ‘인식 전환’이 주된 목표였다”며 “당시에는 홍보가 될까 의아했는데 오히려 시민들이 관심이 많고 (장례에 관한) 허례허식을 없애고자 하는 욕구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는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에는 많은 비용을 들이는 것을 기본 전제로 생각하기 때문에 작은 장례 자체가 사회 문화로 장착되기까지는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