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법인 차량에서 필로폰 성분 주사기가 발견된 경우 DNA 등 검출로 누가 사용한 주사기인지 특정하지 못했다면 마약 투약에 관한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사고후미조치‧무면허운전 등으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유죄를 인정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한다고 19일 밝혔다.
A 씨는 2021년 7월 4일부터 8월 5일까지 모발감정 결과 필로폰 성분이 검출돼 마약 투약 혐의 등을 받았다. A 씨가 사용하는 법인 차량 압수수색에서 필로폰 투약 관련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1개월 후 같은 차량 압수수색에서는 필로폰 성분 주사기가 발견됐다.
문제는 필로폰 성분 주사기에서 A 씨의 DNA 등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A 씨의 4~7cm 길이 1차 모발검사에서 필로폰이 검출된 이후 한 달 뒤 2차 모발검사에서도 1~3cm, 3~6cm, 7cm 이상의 절단모발 전부에서 필로폰이 검출됐다. 이에 검찰은 A 씨가 해당 주사기로 필로폰을 투약했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1심은 법인 차량으로 교통사고를 내고도 도주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사고후미조치‧무면허운전 부분에 유죄를 인정,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의 점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1차 모발검사 1개월 뒤 2차 모발검사에서 필로폰 검출이 됐다는 사정만으로 공소사실 기간 중에 필로폰 투약을 했다는 증명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1심이 마약 투약 부분을 무죄로 판결하자, 검사는 2심에서 마약류 투약 시기를 ‘2021년 7월에서 2021년 8월까지 사이에’를 ‘2021년 7월 4일경부터 2021년 8월 5일경까지 사이에’로 변경하는 내용의 공소장 변경허가 신청을 했고, 법원이 이를 허가했다.
2심은 “공소장 변경으로 그 심판 대상이 변경됐으므로, 원심 판결은 더 이상 그대로 유지될 수 없게 됐다”며 1심 판결을 파기하면서도 징역 1년2개월을 선고해 1심보다 오히려 형량을 높였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 전부를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 중 필로폰 투약 점에 대한 부분이 파기돼야 하는데 이 부분은 유죄로 인정된 나머지 도주치상, 무면허운전 부분과 실체적 경합관계로 결국 원심 판결을 모두를 파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또한 피고인이 일관되게 차량을 여러 사람이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압수된 주사기에서도 다수인의 DNA가 혼합 검출돼 다수인이 차량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