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이해찬·송영길·이재명 사법리스크 비판
李 "여야, 서로 남탓하며 표 달라…정치 한계 상황"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강서지역 호남향우회 간부 등 지역 유지 20여명과 비공개 회동을 가진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 명칭을 사용한 이후 선출된 당대표 5명 중 온전한 사람이 이낙연 한 명이라면 민주당은 문제 있는 당 아닌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22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 전 대표는 전날(21일) 오후 7시 서울 강서구의 한 한식당에서 강서호남향우회 간부 등 20여명과 약 2시간 20분 동안 막걸리를 곁들인 만찬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김진곤 강서호남향우회장을 비롯해 향우회 고문 8명, 감사 2명과 전직 강서구의장, 기업 회장 등 지역 유지들과 이 전 대표 측 수행원 등 관계자 다수가 참석했다. 이 전 대표는 식사 1시간 전 모임 장소였던 강서호남향우회관에서 향우회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이러한 발언을 했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한 참석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 전 대표가 당을 걱정하는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이라는 당 명칭을 사용한 이후 선출된 당대표가 5명(추미애·이해찬·이낙연·송영길·이재명)인데, 이 중 온전한 사람이 이낙연 한 명이라면 민주당은 문제가 있는 당 아닌가'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초대 당대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지만, 문 전 대통령은 당명이 더불어민주당으로 변경되기 전인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 선출됐다.
실제 추미애 전 대표는 아들의 '군복무 특혜' 의혹, 이해찬 전 대표는 '쌍방울 대북송금' 연루 의혹, 송영길 전 대표는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이재명 대표는 백현동 특혜·대북송금 의혹 등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민주당 전·현 대표 4명이 불미스러운 논란에 휩싸이면서 당 전체가 흔들리는 데 대한 우려를 내비친 셈이다. 참석자는 "(이 전 대표의 발언은) 이런 4명이 당대표가 된 것이 민주당의 현주소다, 그래서 비정상적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전 대표는 여야가 서로의 실정·비위 문제에 기대 표를 얻으려 하는 국내 정치 현실을 '정치 한계 상황'이라고 규정했다고 한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를 비난하며 우리에게 표를 달라, 여당은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가 있으니 우리에게 표를 달라는데 서로 남탓하면서 표를 달라고 해선 곤란하다. 이런 정치 한계 상황에 직면한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고 참석자는 전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방안으로는 "제2의 김대중 대통령 정신을 바탕으로 정치권이 창의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이 전 대표는 지난 1년여 간 미국 방문 중 느낀 소회,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한 이야기 등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진 만찬에선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등 정치 관련 이야기는 배제됐다고 한다. 만찬 참석자는 "정치 이야기는 아예 안 하는 자리였다"며 "이 전 대표가 나보다 (호남을) 더 잘 알아 놀랐다. (전남)지사를 하면서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녔더라. 진도를 말하면 진도를, 완도를 말하면 완도 지역을 전부 꿰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 전 대표는 오후 9시 20분께 식사를 마치고 본지와 만나 '호남 원로들과 어떤 이야기를 했나'라는 질문에 "고향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만 말했다. 보궐선거 논의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향후 계획을 묻는 말엔 답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다만 이날 전·현직 당대표 사법 리스크를 정조준한 이 전 대표의 발언은 향후 당내에서 '비명(非이재명)계 구심점'으로서 치명상을 입은 당 도덕성과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내년 4월 총선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지난 17일 백현동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배임 혐의) 신분으로 검찰에서 13시간 이상 조사를 받은 데 이어 매달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비명계 내에선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