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혹한기에 인수합병(M&A)이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선순환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는 기업결합(M&A) 심사 기준 강화 방안이 스타트업의 M&A 시장을 경색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27일 스타트업 지원 민간 기관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최근 '투자 혹한기와 M&A 활성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유치하기 어려운 지금과 같은 혹한기에 경영난에 처한 스타트업은 폐업하는 것보다 낮은 가격에라도 다른 기업에 인수되는 것이 생태계 전체에 긍정적”이라며 “스타트업의 인력과 그동안 투자된 자금을 살리면서 스타트업이 쌓은 기술 및 비즈니스 노하우를 사장시키지 않는 선순환 방안이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탈의 자금 회수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벤처 투자 시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격한 침체기에 들어갔다. 작년 1분기 2조2214억 원 수준이었던 벤처투자 규모는 4분기 1조3268억 원으로 급감했다. 올해 1분기 벤처투자 규모 역시 8815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0% 추락했다. 투자 혹한기로 자금 유치가 어려워지자 벤처ㆍ스타트업들은 비용 절감과 인력 감축, 사업 구조조정 등으로 버티기 모드에 들어갔다. 투자가 막히고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가 힘들어지면서 기업공개(IPO) 역시 어려워졌다.
보고서는 “IPO가 어느 정도 성장한 기업이 시도할 수 있는 투자금 회수(Exitㆍ엑시트) 방안인 반면 M&A는 극초기부터 모든 단계의 스타트업이 시도할 수 있는 방안이라 활용도가 높다”며 “지금과 같은 투자 혹한기에는 M&A의 중요도가 더욱 커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내 M&A 비율은 IPO에 비해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마지막으로 집계한 2020년 6월 기준 자금 회수 유형 및 비율을 보면 IPO가 29%, M&A는 0.7% 수준이다. IPO와 M&A의 회수 금액 합계를 100%으로 보면 IPO가 97.7%로 M&A(2.3%) 비중을 압도한다. 반면 미국은 2020년 기준 M&A가 24.18%, IPO는 75.82%였다.
보고서는 M&A 활성화를 위해 6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엑시트 사례 중 M&A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통계를 마련하고, 관련 지식을 축적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또 M&A의 특성을 감안한 연결 촉진과 국내 대기업이 쉽게 M&A에 참여할 수 있는 문화 조성을 제시했다. M&A를 어렵게 만드는 제도 도입 역시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서의 핵심은 마지막으로 강조한 ‘M&A를 어렵게 하는 제도 도입의 지양’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플랫폼 기업들의 무분별한 확장에 제동을 걸기 위해 플랫폼 M&A의 심사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개정의 핵심은 플랫폼 기업이 새로운 업종으로 진출할 때 경쟁 제한 효과를 더 엄격하게 따지는 것이다. 그간 ‘간이 심사’로 처리된 플랫폼 기업의 이종(異種) 혼합형 기업결합을 ‘일반 심사’로 전환하는 것이다. 국내외 대규모 플랫폼 5~6개를 집중 감시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벤처 업계는 플랫폼 기업 M&A에 이처럼 촘촘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스타트업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봐왔다. 지난해 12월 열린 ‘공정위 M&A 심사기준 강화가 스타트업 생태계에 미칠 영향’ 토론회에서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은 “국내 스타트업은 20만 개에 달하는데 2022년 신규 상장 회사가 코스피 3개, 코스닥 62개, 코넥스 8개에 그친다”며 “나머지 회사는 M&A를 통해서 엑시트를 해 생태계를 선순환할 수 밖에 없는데 M&A를 대기업 입장으로만 보면 스타트업들이 갈 곳이 없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항집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결국 이같은 규제의 피해자가 국내 스타트업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 센터장은 “기업결합 심사 기준이 강화되면 대기업들은 규제를 최대한 피하면서도 글로벌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해외 스타트업으로 눈을 돌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고서가 우려한 것도 같은 지적이다. 송명진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리서치실장은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하지만 스타트업은 J커브로 성장하기 때문에 순식간에 그 대상 기업이 되고, 대기업이 참여하는 경우 여지없이 심사대상이 된다”며 “해당 정책은 가뜩이나 어려운 M&A 시장을 더 경색되게 만들 수 있고, 수많은 M&A 진흥책의 효과를 단번에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정작 피해를 입는 것은 엑시트 통로가 좁아진 국내 스타트업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