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상 의료법인을 내세워 병원을 설립‧운영한 비의료인을 처벌하려면 전반적인 과정에서 탈법 정황이 드러나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7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의료법은 의료법인의 재산을 출연하거나 의료법인의 임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의료인으로 제한하고 있지 않다”며 “비의료인도 의료기관의 개설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출연하거나 의료법인 임원 지위에서 의료기관 개설‧운영에 주도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 주도성 법리를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의 개설자격 위반 판단에 그대로 적용하면 비의료인에게 허용되는 행위와 허용되지 않는 행위의 구별이 불명확해진다”며 “이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료법인 설립 과정에 하자가 있었다거나,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의 재산을 일시적으로 유출했다는 정황만을 근거로 비의료인이 자격을 위반했다고 평가할 순 없다고 짚었다. 의료법인 설립 및 운영의 전과정에서 나타난 영리추구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실질적으로 재산 출연이 이뤄지지 않아 실체가 인정되지 않는 의료법인을 의료기관 개설·운영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했다거나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의 재산을 부당하게 유출해 의료법인의 공공성·비영리성을 일탈했다는 사정이 인정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의료법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의료법인 등이 아닌 자가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을 제한하고 이를 위반하면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A 씨는 의료인이 아니면서 형식적으로 의료법인을 설립한 뒤 이사장 자격으로 요양병원을 설립해 영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적법한 의료기관으로 위장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137억8000만 원의 요양급여를 챙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도 있다.
1심은 A 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의료법인 이사와 감사가 모두 A씨 가족과 지인으로 구성됐고 이들 대부분은 의료법인 운영 경력이나 의료기관 종사 경력이 없다"며 실질적 운영권이 A 씨에게 있다고 봤다.
2심은 유죄 판단을 유지하면서도 양형이 무겁다며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A 씨가 경영난에 처하자 자기 재산을 처분해 운영비로 사용하고 직원 급여 등을 지급한 점 등을 고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