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기관에 보험개발원
의료단체 반발 극복 과제
14년째 공회전을 거듭했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안이 드디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정부는 제도가 도입되면 연간 최대 3000억 원이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막판 쟁점이었던 청구 중계기관은 민간단체인 보험개발원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의료·환자단체의 반발은 넘어야할 산이다.
◇14년 만에 국회 첫 관문 통과…남은 절차는=16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은 2009년 이후 14년 만에 의결됐다. 정무위 관계자는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는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이 중계를 하는 것으로 의결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정무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국회 본회의 절차가 남았다.
관련 법 개정안은 총 6건(전재수·윤창현·고용진·김병욱·정청래·배진교 의원 각각 대표 발의)이다. 각 법안은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은 실손보험 가입자가 요청하면 해당 의료기관이 진료비 등 관련 서류를 보험사에 보낼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는 실손보험 가입자가 의료기관에서 직접 서류를 받아 보험사에 제출해야 한다.
앞서 여·야는 지난달 25일 열린 정무위 법안심사1소위에서 의견 차를 좁혔다. 다만 실손보험 청구 중계기관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으로 할지 아니면 제3기관으로 할지 등을 놓고 결론을 내지 못했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심평원을 통한다면 효과적인 비급여에 대한 통제수단으로써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면서도 "제3의 기관을 거치는 것에 아주 심각한 부작용을 더 초래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반대 의견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서류뭉치 없어도 보험금 입금…소비자 편의 ↑=현재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려는 소비자는 진료를 마친 뒤 병원이나 약국에 직접 방문해 종이 서류를 발급받고 보험설계사나 보험사의 팩스·앱 등을 통해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개정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소비자는 이런 복잡한 절차 없이 병원에 요청하는 것만으로 실손보험 청구를 마칠 수 있다.
법 개정으로 소비자의 편익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말 기준 실손보험 가입자 수는 3997만 명에 달한다. 2020년 기준 연간 실손보험 청구 건수도 약 1억626만 건에 이른다. 국민 대부분이 가입한 보험이지만 그간 번거로운 과정으로 인해 소비자가 실손보험 청구를 포기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실제 2021년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등 시민단체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7.2%는 절차가 복잡해 실손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95.2%는 자신이 포기한 금액이 30만원 이하의 소액 보험금이라고 밝혔다. 청구가 간소화되면 아무리 소액이라도 보험금을 청구하는 소비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종이 서류 발급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기대되는 효과다. 금융당국은 제도가 도입되면 실손보험 가입자의 보험금 청구가 편리해지고 연간 최대 3000억 원이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료계ㆍ환자단체 반발 해결은 숙제=반면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반대하고 있다. 환자의 민간정보 유출이 우려되고 보험사가 진료 정보를 축적해 보험금 지급 외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손보험은 민간 보험사와 가입자간 사적 계약일뿐 건강보험이나 자동차보험과 같은 공적제도가 아닌데 제3자인 요양기관에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도 내세운다. 전날 의료업계와 환자단체는 각각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간소화법을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