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망가뜨렸던 동맹 관계를 복원하겠다고 항상 강조해왔다. 그러면서 중국과 벌이는 패권전쟁에 동맹국들이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실상은 바이든 시대 미국은 겉으로는 중국을 때리면서 동맹국 괴롭히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 동맹국들이 미국을 의심하고 중국과 친해지려고 하는 것은 바이든의 업보일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 등 서구권 외교가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중국을 국빈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마크롱은 “유럽이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의 대립에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며 유럽이 ‘제3의 슈퍼파워’로 떠오르기 위한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했다. 한마디로 중국이 그토록 원하는 대만 문제에 대한 서구권의 불개입과 ‘다극화된 세계’를 유럽연합(EU)의 맹주인 프랑스 수장이 역설한 것이다.
마크롱만 친중 행보를 보였는가. 다른 유럽 정상들도 중국을 잇따라 방문하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시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된 직후인 지난해 11월 중국을 방문했다. 지난달에는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중국 방문 유럽 정상 대열에 합류했다.
중동에서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를 이끄는 등 ‘평화의 중재자’로 떠올랐고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중동 입지를 한층 좁혔다는 비판을 받게 되는 처지에 몰렸다.
그러나 바이든도 할 말은 없다. 다른 나라 정치인은 물론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마저 앞장서서 중국을 찬양하고 그편을 들어주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팀 쿡 애플 CEO는 지난달 “중국은 애플과 공생관계”라며 “지난 30년간 함께 성장해왔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은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에 중국 반도체 공장을 어떻게 유지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이달 초 상하이를 방문해 대형 공장 건립을 발표했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가 무색하게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이달 중순 중국을 찾아 한정 국가부주석 등 고위층 인사와 두루 만나고 하이난에 새로운 사무실도 연다고 밝혔다.
바이든 정부는 동맹국 정부와 기업들에 중국과 사업하지 말라고 온갖 압박을 가하고 있는데 미국 대표 기업 CEO들은 당국의 그 어떤 제지도 받지 않고 거대한 중국시장 개척에 몰두하는 형국이다.
이러니 미국의 동맹들이 바이든 대통령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하고 반중국 전선 형성을 꺼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할 마음이 진심으로 있는지도 의문이다. 무역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지난해 미국과 중국의 교역액은 6906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동맹마저 등을 돌리게 하는 바이든의 어설픈 외교와 경제정책으로 미국의 입지는 오히려 좁아지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미국, 중국 어느 쪽에도 편들지 않고 실용주의 노선을 걷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며 그중에서도 경제 파워가 강한 25개 국가를 별도로 모아 ‘거래적인 25개국(Transactional 25·T25)’으로 명명했다. ‘제3세계’나 ‘글로벌 사우스’ 등 비동맹 국가들을 가리키는 용어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결정적 차이점은 T25 국가 중에는 싱가포르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부국이며 미국과 매우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던 나라들도 포함됐다는 것이다.
미국은 왜 이들 국가가 극도의 실용주의 노선을 걸으려고 하는지, 미국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찰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결국 미국이 자신의 편을 확고하게 많이 확보하려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반도체 지원법처럼 자신의 배만 철저하게 불리려는 이기주의적인 모습보다는 동맹의 부담도 덜어줄 수 있는 현명한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
예를 들어 이달 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 현대차 등 동맹국 브랜드를 포함했어도 미국을 보는 시선이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중국 ‘반도체 굴기’를 막으려 한다면 이미 현지에서 막대한 사업을 펼치는 동맹국 한국 기업들이 피해를 최대한 덜 보도록 배려해야 한다. 친구의 어려움을 헤아릴 줄도 모르면서 “나만 믿고 따르라” 하는 게 말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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