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린데는 뉴욕 집중 위해 프랑크푸르트 떠나
중국 기업들도 미국 상장 다시 속도
해외 IPO 규모, 홍콩·런던의 8배
뉴욕증시에 웃음꽃이 피었다. 일본 소프트뱅크 자회사인 반도체 설계기업 ARM은 최근 뉴욕증시 단독 상장을 결정하고 절차에 착수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영국 정부의 구애를 뿌리치고 뉴욕 손을 들어줬다. 연내 상장 예정으로 최소 80억 달러(약 10조3000억 원)를 조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일랜드 건설자재 업체 CRH도 런던에서 뉴욕으로 상장지를 이전한다고 밝혔다. 독일 화학업체 린데 역시 뉴욕증시에 집중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를 떠났다. 린데는 독일 ‘DAX 지수(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상장 주식 중 30개 기업으로 구성)’ 종목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중국 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지난 2년간 주춤했던 뉴욕증시 상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당국이 해외 상장 규제를 강화했지만, 전자업체 헤사이그룹은 지난달 나스닥 상장을 통해 1억9000만 달러를 조달했다. 패스트패션 소매업체 셰인 역시 뉴욕 상장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증시는 풍부한 자금을 배경으로 해외 기업을 빨아들였다. 미국 큰손들은 자국 증시를 놀이터로 삼는다. 환리스크 등 해외 투자 과정에서 발생하는 장애물을 감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미 증시에 자금이 몰리는 원천이 된다. ARM은 뉴욕 증시 상장을 통해 기업가치를 50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당 규모는 영국 증시에서 상위 10위이지만, 미국 S&P500에서는 150위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 상장사들의 평가 가치가 월등하다는 의미다.
미국 경제 호황과 기업 성장도 매력적으로 작용했다. CRH는 뉴욕 이전 배경으로 핵심 순이익의 75%가 북미에서 창출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미국 증시 ‘붐’은 격세지감으로 느껴진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영국이 관련 규제를 완화하면서 뉴욕의 경쟁력을 갉아먹었다. 런던이 대기업 IPO를 쓸어가면서 뉴욕을 넘어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그러나 빅테크 등장과 함께 미 증시가 존재감을 뽐내면서 지난 10여 년 동안 자본의 대이동이 벌어졌다.
지난해 말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 상장사들의 시가총액은 총 40조3000억 달러로, 런던 증시 3조1000억 달러의 13배에 달했다. 10년 전 6배에서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이다. 글로벌마켓츠어드바이저리그룹의 로우 파스티나 매니저는 “기업들이 뉴욕으로 몰려 오고 있다”며 “그곳에 돈이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수십 년간 지속된 글로벌 금융허브 경쟁에서 홍콩과 런던이 패배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데이터 제공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미국 증권거래소가 유치한 해외 IPO 규모는 총 240억 달러로, 홍콩·런던을 합친 것보다 8배 많았다.
한때 글로벌 기업을 끌어모았던 홍콩 증시는 최근 중국 기업들의 앞마당으로 전락했다. 런던은 투자자 기반이 부족하다는 점이 맹점으로 꼽힌다. 영국 연기금과 보험사들이 자국 증시에 투자하는 자산은 일부분에 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