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와 증시 부진이라는 이중고에 짓눌렸던 증권업계의 지난해 4분기 및 연간 실적 발표가 시작됐다. 예상대로 증시가 4분기 바닥을 찍고 ‘상저하고’의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는 반면, 이제 시작에 불과할 뿐 앞으로 더 짙게 드리울 글로벌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증권업계가 올 상반기 본격적인 혹한기에 진입할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찮다.
1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실적추정치가 있는 증권사 6곳(삼성·대신·미래·NH·키움·메리츠)의 순이익 합은 4386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9379억 원) 대비 53.24% 감소한 수치로 1년 새 ‘반 토막’이 난 것이다.
영업이익도 1조1588억 원에서 6245억 원으로 46.11% 쪼그라들었다. 증권업에 대한 실적 눈높이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이 기간 순이익과 영업이익은 한 달 전 전망치와 비교해도 각각 41.29%, 34.95% 감소했다.
지난해 증시 불황으로 잇달아 하향되던 증권사들의 전망치가 실적 시즌이 막을 올리며 부진한 흐름이 가시화하는 모습이다. 2년 연속 ‘1조 클럽’ 자리를 지켜온 미래에셋증권은 지난달 26일 연결 기준 지난해 잠정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43.1% 감소한 8459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당기순이익은 47.7% 감소한 6194억 원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대형사인 NH투자증권 역시 지난해 영업익이 직전년도(1조2940억 원) 대비 반 토막이 난 5213억 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도 67.5% 감소한 3029억 원으로 집계됐다. 삼성증권도 매출액은 13조4869억 원으로 전년보다 37.5% 증가했으나, 순이익은 전년 대비 56.1% 줄었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중소형사들의 실적은 더 처참하다. SK증권은 지난해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97.1%, 96.7% 감소한 15억 원과 13억 원으로 나타났다. 한화투자증권의 지난해 영업이익도 79%가 꺾인 438억 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이익은 476억 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한양증권도 직전 연도에 비해 매출은 27.8% 늘었지만, 영업익은 68% 감소했다. 한양증권은 “채권 거래 증가에 따른 매출액 증가와 자기매매 및 기업금융 부문에서 전년 대비 영업이익 감소하면서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라고 말했다.
증권사들에게 지난해는 혹한의 시간이었다.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증시 한파가 몰아치면서 수탁 수수료와 브로커리지(주식 위탁매매) 수입이 대폭 날아갔다. 레고랜드 발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역시 발목을 잡았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늘어나는 미분양 물량은 부동산 PF 대출을 취급했던 증권사들의 시한폭탄이 됐다.
일각에서는 올해 들어 금리 인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증권업종이 바닥을 찍은 것 아니냐는 기대도 나온다. 실제로 코스피 지수는 물론 증권주도 연초부터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새해 첫 거래일과 이날 종가를 비교하면 대부분 증권주들은 코스피 수익률을 웃돌고 있다.
문제는 증권사 수익성에 높은 기여도를 차지해온 수탁수수료와 IB(투자은행) 관련 상황이 앞으로 더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금리 인상 압력은 올해 들어 다소 완화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그동안 증권사 호실적을 떠받쳤던 부동산 PF 부문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커지고 있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IB 수익의 대부분이 부동산 금융인데, 미분양 주택이 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수수료 수익이 줄어드는 정도가 아니라, PF 채무보증을 많이 섰던 증권사들이 우발부채가 터져서 손실을 떠안는 상황이 되면, 적자전환이 날 수도 있는 것”이라며 “지난해 4분기에만 적자가 300억 넘게 난 증권사도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부분 증권사는 결산 시점에 맞춰 충당금을 쌓기 때문에 그해 실적 중 4분기가 제일 안 좋다. 여기에 경기침체로 증시 호황도 다시 돌아오기도 쉽지 않고, 지난해 금리 인상을 많이 하면서 신규 차입한 증권사들은 고금리 이자들이 올해부터 본격 반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