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공공의료에 돈 아끼겠다는 정부

입력 2023-01-31 05:00 수정 2023-08-1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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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뿐만 아니라 사스, 메르스 등 국민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각종 위기와 재난 시에 국가 중추 의료기관으로서 소임을 다하고자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정부가 약속한 대로 하루빨리 제대로 된 신축 이전이 되기를 지난 20년간 소원해 왔습니다.”

국립중앙의료원(이하 의료원) 신축·이전과 관련 애초 계획보다 병상수와 사업비를 축소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한 의료원 전문협의회(이하 협의회)의 대국민 호소문 중 일부다. 협의회는 기획재정부가 최근 발표한 ‘의료원 신축·이전 계획’에 대해 “현재 병원 규모로 건물만 새로 지으라는 통보이자 사업축소”라며, 기재부 결정을 불수용하기로 했다. 또한 규탄시위와 사업축소 반대 범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논란의 이유는 병상수와 총사업비가 줄어서다. 의료원과 보건의료노조 등에 의하면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2021~2025)’과 2021년 9월2일 노정협의에 따라 의료원 신축·이전 부지는 2020년 서울 중구 방산동(미국 공병단 부지)으로 결정됐다. 이어 2021년 신축·이전 규모는 의료원 모병원(본원) 800병상, 중앙감염병전문병원 150병상, 중앙외상센터 100병상으로 확정됐다. 그러나 기재부는 올해 초 모병원 526병상, 중앙감염병원 134병상, 외상센터 100병상으로 축소했고, 사업비(예산)도 줄였다.

비판이 이어지자 기재부와 복지부는 설명자료를 통해 ‘사업축소는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지난해 8월 조세재정연구원이 수행한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에 따라 도출된 ‘1안 496병상’, ‘2안 596병상’ 중 2안으로 적정 병상수를 정했다는 것이다. 서초구 원지동에서 방산동으로 신축부지가 바뀌며 진료권이 변경됐고, 진료권 내 병상 초과공급, 의료원의 낮은 병상이용률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전쟁 후 1956년 유엔한국재건단(UNKRA) 등의 지원으로 국립중앙의료원 건립이 시작됐고, 1958년 문을 열어 올해로 65년이 됐다. 2002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를 거치며 국가 감염병 위기 대응에 중추 역할을 해왔다. 다만 시설이 낙후해 2003년부터 신축·이전 논의가 시작됐으나, 부지 선정과 예산확보 등 20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었다. 결국 메르스와 코로나19를 거치며 2020년 신축·이전이 확정됐지만, 기재부의 사업축소로 논란이 발생했다.

기재부는 축소가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근거로 제시한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는 2가지를 간과하고 있다.

하나는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과 중중·필수의료와 의료취약계층 지원 등 국가 공공의료의 중추 역할을 하는 국립중앙의료원에 경제논리를 적용한 점이다. 공공보건의료는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헌법 36조3항)’라는 헌법 조항을 거론하지 않아도 전국민 건강보험체계에서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재정절감도 중요하지만 돈 몇푼 아끼자고 장기적인 국가 공공의료 발전계획을 아무런 사회적 합의 없이 바꾸는 것은 옳지 않다. 특히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기업의 사명”을 강조해온 고(故) 이건희 회장의 평소 철학을 반영해 유족들이 의료분야 지원을 위해 사회에 환원한 1조 원 중 5000억 원이 의료원 신축·이전과 관련된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건립에 사용하도록 했다는 점에서도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또 다른 하나는 지난 65년간 낙후한 시설과 열악한 근무여건에서도 꿋꿋하게 환자 곁을 지켜온 의료진들의 헌신을 무시했다는 점이다. 구성원이나 관련 전문가들과 협의 없이 계획을 바꿔서다. 의료원 전문의협의회가 대국민 호소에 나선 것도 환자와 국민을 위해 국립중앙의료원이 국가 중심 병원으로 제대로 기능하도록 해야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늑장대응으로 생명을 잃는 것보다 과잉대응으로 비난받는 게 낫다.” 감염병을 소재로 한 2011년 영화 ‘컨테이젼’ 속 엘리스 치버(로렌스 피쉬번)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장의 대사다. ‘적정성’을 내세워 공공의료에 돈을 아끼려다 늑장대응을 하는 정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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