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기초 체력’ 리스크 민감한 A급 회사채...‘투심 양극화’ 심화

입력 2023-01-24 09:23 수정 2023-01-2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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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이하 비우량 회사채 '살얼음판'
우량-비우량 거래대금 격차 최대 9배
효성화학 1200억 원 모집에 '주문 0건'
반면 LG화학 4000억 발행에는 뭉칫돈
신세계푸드·하나F&I도 3~7배 자금 유입

▲화사채 수요예측 현황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금융투자협회, 신영증권)
▲화사채 수요예측 현황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금융투자협회, 신영증권)
새해에도 회사채 발행시장의 양극화 현상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금 시장이 ‘1월 효과’에 힘입어 진정세로 돌아섰다고 하지만, 일부 A급 이하 비우량 회사채들은 곳곳이 살얼음판이다.

같은 비우량채 내에서도 AA 등급에 더 가까운 A+ 등급 또는 탄탄한 모기업과 실적 개선세를 지닌 기업일수록 자금 조달에 성공하는 모습이다. 이에 전반적인 크레딧 강세 흐름보다는 비우량채 내 ‘옥석가리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가 시작된 후 15거래일 동안 ‘AA-’등급 이상 회사채(무보증사채 기준)는 총 9조6870억 원 거래됐으나, ‘A+’ 등급 이하(투기등급 포함)는 1조3730억 원 거래되는 데 그쳤다.

연초에도 우량 회사채와 비우량 회사채 간 거래대금 격차가 최고 9배 가까이 벌어지는 등 양극화 현상이 지속되는 셈이다. 크레딧 시장에서는 신용등급 AA 이상 회사채를 우량, A 이하는 비우량 회사채로 분류한다.

첫 A급 발행인 효성화학(A0)은 지난 17일 1200억 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목표로 지난 18일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시행한 결과 0건 주문을 받았다. 산업은행이 인수해준 700억 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량 미매각’된 것이다.

같은 날 동종업계인 LG화학(AA+)에 3조8000억 원 이상의 주문이 들어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앞서 한국신용평가는 효성화학에 대해 ‘A, 부정적’ 평가를 유지하면서 영업환경 악화에 따른 수익성 부진과 과중한 재무부담 지속 등을 고려할 때 향후에도 수익성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봤다.

정혜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직 시장 전반으로 A급 이하에 대한 우려가 지배적인 환경”이라며 “효성화학의 전량 미매각은 비우량 기업의 발행 부진을 잇따라 발생시킬 만한 결과로 앞으로도 전량 미매각 결과는 아닐지라도, 상위등급처럼 강한 수요 유입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진단했다.

회사채 BBB 등급에서 올해 처음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한 제이티비씨(JTBC) 역시 대규모 수요 부진을 기록했다. JTBC는 발행금리 연 8.5%에 350억 원 규모의 회사채에 대한 수요예측을 시행했으나, 140억 원의 주문만 들어오는 데 그쳤다. JTBC는 지난해 3분기 기준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다.

▲회사채 등급별 거래량 (코스콤)
▲회사채 등급별 거래량 (코스콤)

올해 수요예측에 나선 A급 이상 회사채들은 모두 넘치는 수요가 몰리면서 증액발행에 성공했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16일까지 진행된 AA등급 이상의 우량채 14곳(KT, 포스코, GS에너지 등)의 수요예측은 대부분 1조 원이 넘는 주문을 받으면서 약 22조900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이 유입됐다.

이에 따라 A급 회사채들도 우량채들의 폭발적인 자금 몰이에 편승하고자 회사채 공모 시장에 다시 뛰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자금 경색으로 채권 시장이 침체되면서 A급 기업들은 지난해 10월을 끝으로 공모 회사채 발행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바 있다.

다만 같은 A급 내에서도 대기업 계열 후광 또는 기업 전망에 따라 희비가 갈리는 모습이다. 신세계푸드(A+)와 하나F&I(A0)의 수요예측에는 모집액의 3~7배에 달하는 자금이 유입되면서 발행에 성공했다.

대기업그룹 계열사라는 배경과 A급 내에서도 실적 개선이 전망되는 우량채로 꼽힌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하나그룹 계열의 NPL(부실채권) 투자 전문기업 하나F&I와 음식료 업종의 신세계푸드는 경기방어적 성격이 강한 업종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경기침체 국면에 진입한 상황에서 기업의 재무구조와 종합 펀더멘탈에 따라 A급 비우량채에 대한 경계감이 해소되고 남은 수요예측 결과에 대한 성패를 가로 지을 것으로 예상한다.

한 대형증권사 채권발행시장(DCM) 관계자는 “올해도 경제성장률 하향과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기업 실적이 악화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투자자들 사이에 우량 회사채를 선호하는 경향”이라며 “특히 A등급은 등급 하향 조정에 따라 언제라도 BBB급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외면하는 것으로 보인다. 업종과 회사 펀더멘털에 따라 선별적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경기침체와 등급 하향 압력이 올 한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비우량 등급 투자의 난이도는 그 어느때보다 높아졌고, 이에 펀더멘탈이 양호한 그룹 계열 회사채를 중심으로 투자가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당국은 비우량 등급 회사채까지 자금시장이 안정세가 확산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8일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하고 “여전히 우량물 위주로 투자수요가 집중되는 등 시장의 불안감과 양극화가 지속되고 있다”며 “은행은 자금공급 여력도 가장 큰 경제주체인 만큼 적극적인 역할을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한편 설 연휴 이후 회사채 발행을 앞둔 A급 기업으로는 27일 SK인천석유화학(A+, 1500억 원), 다음 달 2일에 SK렌터카(A+, 1200억 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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