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 유부남과 격정 뒤엔…살색의 향연 끝에 오는 허무 '단순한 열정'

입력 2023-01-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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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달 1일 개봉하는 영화 ‘단순한 열정’ 스틸컷. (㈜영화사 진진)
▲ 다음달 1일 개봉하는 영화 ‘단순한 열정’ 스틸컷. (㈜영화사 진진)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 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022년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프랑스의 저명 소설가 아니 에르노(1940~)의 대표작 ‘단순한 열정’(1991)의 첫 문장이다. 이 단편은 분류하자면 ‘야하고 부도덕한 소설’이다.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프랑스 중년 여인이 러시아 출신 연하 유부남과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데, 그 쾌락이 너무 커 잠시간 인생의 갈피를 잃을 정도라는 내용이다.

60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이지만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아니 에르노의 대범한 작가적 캐릭터를 대중과 평단에 단숨에 각인시켰다.

▲ 다음달 1일 개봉하는 영화 ‘단순한 열정’ 포스터. (㈜영화사 진진)
▲ 다음달 1일 개봉하는 영화 ‘단순한 열정’ 포스터. (㈜영화사 진진)

이 소설은 2020년 다니엘 아르비드 감독의 손을 거쳐 영화화돼 제73회 칸영화제에 초청됐는데, 국내에서는 다음 달 1일 동명의 제목으로 개봉한다.

영화 ‘단순한 열정’은 ‘한 남자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주인공 엘렌(라에티샤 도슈)의 혼잣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원작 소설과 동일한 전개를 취한다.

다만 소설 속 화자의 입을 통해 설명되던 관계가 실제 배우들의 행위로 구현되면서 ‘살색의 향연’이라고 칭할 만한 강렬한 성적 묘사를 동반한다. 주인공 엘렌과 연하의 러시아 유부남(세르게이 폴루닌)의 끝도 없이 이어지는 정사신은 불필요한 성적 묘사는 지양한다는 근래의 극장가 분위기에서는 보기 드문 ‘19금’이다.

거친 유희 끝엔 허무… 중심 잃은 삶의 순간을 기록으로

▲ 다음달 1일 개봉하는 영화 ‘단순한 열정’ 스틸컷. (㈜영화사 진진)
▲ 다음달 1일 개봉하는 영화 ‘단순한 열정’ 스틸컷. (㈜영화사 진진)

문제의 유부남은 온몸에 문신을 새겼고, 아내도 아닌 불륜 상대의 옷차림에 간섭하며, 심지어는 독재자 푸틴을 좋게 평가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지성과 자유를 중요하게 여겨온 주인공 엘렌과는 사회적 계급 차이가 느껴지도록 연출했다.

핵심은 그런 그와의 만남에 정처 없이 휘둘리는 주인공 엘렌이다. 감독은 정사가 끝날 때마다 “난 널 원해”, “내 곁에 있어줘”와 같은 지나치게 통속적인 가사의 대중가요를 곁들이는데, 언뜻 품위 있어 보이는 삶을 사는 중년의 주인공의 삶이 실제로는 나사가 풀린 듯한 혼란에 사로잡혀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 다음달 1일 개봉하는 영화 ‘단순한 열정’ 스틸컷. (㈜영화사 진진)
▲ 다음달 1일 개봉하는 영화 ‘단순한 열정’ 스틸컷. (㈜영화사 진진)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원작자인 아니 에르노의 생애에 관한 얼마간의 이해가 필요하다. 원작 소설 ‘단순한 열정’ 국내 출간 당시 해제를 쓴 이재룡 숭실대 불문과 교수는 “’단순한 열정’, ‘탐닉’, ‘집착’은 한 인간의 정체성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힘겹게 성취한 지성인의 지위와 자존이 무너져 결국 인간의 원초적 형질, 잔해만 남는 과정을 가혹하게 진술한다”는 것이다.

어렵게 갈고 닦은 삶이 왜 무너졌는지는 각자 삶의 지나온 궤적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촉매제는 사랑하는 이로부터의 배신이었을 수도, 가족과의 이별이었을 수도 있다. 영화 ‘단순한 열정’은 그이유를 드러내는 대신 그저 망가져가는 삶의 어느 시점을 관통하는 이의 시점을 취하면서, 한 인간의 불안하고 뒤틀린 자아를 강렬한 시청각적 요소로 대변한다.

주인공 엘렌의은 강렬했던 만남 이후로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읊조리며 이야기를 끝맺는다. 그 자평이 더는 욕망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자신감인지, 욕망에 굴복한 사람이 되었음을 감추기 위한 자기 과시인지 판단하는 것은 보는 이의 몫이다.

‘단순한 열정’, 2월 1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9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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