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앙숙, 미국과 이란이 그라운드 밖에서 설전을 벌였다. 미국이 SNS에 올린 이란 국기 때문이다.
미국축구연맹(USSF)은 27일(한국시간)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 ‘B조 순위표’를 올렸다. 그런데 이란 국기가 이슬람 공화국 문양이 지워진 채 녹색ㆍ흰색ㆍ적색의 가로띠로만 이뤄져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을 일으킨 세력이 한 해 뒤 국기에 추가한 이 문양은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란 관영 언론은 “미국을 즉각 월드컵 본선 경기에서 퇴출하고 10경기 출전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란 축구협회 역시 FIFA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은 왜 문양을 지웠을까. 이란 정부에 대한 정치적 비판이다. 두 달 전 이란에서는 20대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갔다가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여성의 머리와 목 등을 가리는 히잡은 여성 억압의 상징이다.
이란 여성들은 “자유”를 외치며 반발했고, 정부는 이를 무력으로 탄압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멈추지 않았다. 되레 지도부 부패를 규탄하고, 정치 탄압을 비판하는 반정부 시위로 확산했다. 시위대는 가운데 문양이 없고 가로띠로만 이뤄진 국기를 사용 중이다.
CNN은 USSF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기본적 인권을 위해 싸우는 이란 여성을 지지하기 위해 엠블럼을 지웠다”라고 보도했다. 또 “국기 변경은 일회성으로 늘 원래 국기로 되돌려 놓을 생각”이었다고 덧붙였다.
USSF의 이번 행동은 미국 국가대표 선수들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수비수 워커 지머먼은 “소셜 미디어 게시물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여성 인권에 대해서는 항상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치적 앙숙인 미국과 이란은 그라운드 안에서도 맞붙었다. 결국 우승은 미국이 가져갔다. 2차전에서 웨일스를 2-0으로 격파했던 이란은 조 2위 자리를 미국에 내주며 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