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는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법제화’를 둘러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납품단가 연동제의 시범사업 도입 당시 한 국책연구원이 관련 제도 도입의 신중론을 제기한 데 이어 이번엔 관련 법안이 국회 소위 문턱을 넘자 경제5단체가 반대 성명을 꺼내들었다. 중소기업계에선 “아쉽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2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납품단가 연동제 법안을 의결했다. 전날 산자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이어 이날 상임위 전체 회의를 통과하면서 앞으로 법제사법위 심사와 본회의 표결을 남겨두고 있다. 여야 합의로 상임위를 거친 만큼 본회의 역시 무난히 통과할 전망이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원청 업체와 하청 업체간 거래에서 원자재 가격 변동분을 납품 단가에 반영하게 하는 제도로 중소기업계의 숙원 사업이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논의 테이블에 처음으로 오른 뒤 무려 14년 만에 도입을 앞두고 있다.
제도 도입이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 중소기업계는 계속된 제동 걸기에 편하지만은 않은 분위기다. 앞서 지난 9월 납품단가 연동제 시범사업이 시작된 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납품단가 연동제에 대한 경제학적 논의’ 보고서를 내고 연동제 의무화의 부작용을 지적했다.
대기업들이 연동 부담을 피하기 위해 계약 기간을 단축하거나 다른 거래 조건을 왜곡해 이익을 보전하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라는 평가다. 또 연동조항에 대한 부담을 과도하게 느끼면 원사업자가 기존에 수급사업자에게 주던 일을 직접 하기로 결정하고, 이 경우 수급사업자인 중소기업은 일감이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사업자가 소비자에게 비용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고도 봤다. 당시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런 불공정 거래 행위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제도를 악용하라고 유도하는 것으로 들릴 수 밖에 없다"고 날을 세웠다.
특히 당시 김기문 중기중앙회 회장은 리더스포럼에 참석하던 중 관련 보고서를 언급하며 “연동제는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연동하는 질서를 잡는다는 건데 우리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정면 반박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여야가 민생법으로 합의까지 한 내용인데 계속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건 안타깝다”며 “하루이틀 얘기라는 해온 게 아니라 14년동안 얘기해왔다”고 언짢은 심기를 드러냈다.
이번에 제동을 건 곳은 경제5단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은 전날 납품단가 연동제 법제화 움직임에 “내년 국내외 경제가 본격적인 침체에 들어설 것이라는 경고음이 들려오는 시점에 연동제 법제화를 서둘러 추진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계약법의 기본원리인 ‘사적자치의 원칙’ 훼손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또 중소기업이 원사업자일 경우 원자재 가격 상승 시 대금을 추가 지급하게 돼 되레 중소기업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범사업 종료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법제화를 추진해도 늦지 않다는 게 5단쳬의 설명이다.
계속되는 납품단가 연동제 흔들기에 중소기업계에선 '안타깝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법안이 무난히 통과되겠지만 대기업들은 유쾌하지는 않아 보인다”며 “여야가 민생법안 1호로 내걸고 당론으로 도입을 추진한, 사실상 사회적 합의를 거친 법안인데 여전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