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채권시장에서 큰손을 담당했던 보험사들이 유동성 악화를 겪으면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은행권 예금금리가 수직상승하면서 돈이 몰려가자 보험권 자금이 대거 유출되는 '머니무브' 현상이 가속화됐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내던지고 있는데, 국내 채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아 우려가 큰 상황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국고채의 28%를 보험사들이 들고 있다. 올해 상반기 보험사들의 국채 매수금액도 전체의 14.8%에 이른다.
그러나 보험사는 장외채권 유통시장에서 지난 1~4일 4869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보험사는 지난 9월 순매도(6317억원)로 전환한 뒤 지난달 2조2319억원으로 규모를 더욱 늘렸다. 이달 순매도 금액은 지난달 기록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최근 보험사들이 장기물 채권을 시장에 던지게 된 이유는 저축성보험 해약 증가 때문이다. 예·적금 금리가 상승하자 저축성보험의 금리 경쟁력이 떨어졌고, 이에 소비자들이 저축성보험을 해약하고 예·적금으로 갈아타는 경우가 증가한 것이다. 저축성보험을 해약하면 보험사는 소비자들이 납입했던 보험료를 돌려줘야 하므로 그만큼 현금이 빠져나가고 유동성 비율이 떨어진다.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흥국생명은 지난 1일 2017년 발행한 5억 달러(발행 당시 약 5571억 원) 규모 달러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를 연기한다고 발표했다가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엿새 만에 철회했다.
DB생명은 오는 13일 예정됐던 300억 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일을 내년 5월로 변경했다. 국내 금융기관의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이 연기된 것은 2009년 우리은행 후순위채 이후 13년 만에 처음 있는 일로, 당시에도 한국물 채권 가격이 급락하는 등 시장 전반에 타격을 입었다.
카드·캐피탈 사도 사실상 올해 영업을 중단한 상황이다. 금리 상승으로 조달금리가 뛰면서 신차 할부 금리가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캐피탈 업계 관계자는 "조달금리는 오르는데 할부금융 금리는 그만큼 올릴 수가 없어 영업 할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라며 "캐피탈 사 대부분 소극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 사실상 올해 영업은 중한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여신금융업계에 따르면 이달 신차 할부금리는 6∼7%대(이하 할부기간 60개월 기준) 수준이다. 3개월 전과 비교하면 금리 수준이 거의 2배 수준으로 뛰었다.
자동차 할부금리가 이처럼 급등한 것은 기본적으로 국내외 금리 상승으로 카드·캐피탈사의 시장 조달금리가 급격하게 올랐기 때문이다. 3년 만기 카드채(신용등급 AA·민평 3사 평균) 금리는 지난 4일 기준 6.1%로, 작년 말 2.4% 대비 3.7%포인트 급등했다.
문제는 카드·캐피탈들이 이런 금리 수준으로도 자금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채권시장 심리가 급랭하면서 일부 카드사나 캐피탈사는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 길이 사실상 막혔다.
금융당국은 지난 3일부터 채권시장안정펀드에서 일부 여신전문금융사의 채권을 매입하는 등 여전채와 관련한 자금 조달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고 있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카드ㆍ캐피탈은 여전체 시장 자체가 경색돼 있기 때문에 자금 경색의 문제가 있다"며 "당장은 부실 문제보다는 자금 조달이 안 되는 상황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자금조달 경색이 완화되면 다음으로 대출에 대한 부실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며 "부동산 PF가 리스크 커지고 단기 금융시장에서 자금 조달하는 것은 정부가 채안펀드 등을 통해 조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2금융권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이슈 등으로 채권시장 혼란의 가중까지 더해 기업들의 자금 경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산업별 영향도를 파악하고 향후 추가금리 인상에 대비해 이자비용 충당여부를 보수적으로 판단 및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