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경제불황 속에서 물가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초입 단계에 진입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24일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의 경제정책’ 세미나에서 “미국 등 주요국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고, 한국은 스태그플레이션의 초입 단계”라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8.3%로 2000년 이후 평균치(2.6%)를 상회하고 있다. 1분기 경제성장률도 잠재성장률(2.1%) 대비 2.7% 낮은 –0.6%를 기록했다. 반면 한국은 물가상승률이 미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며, GDP 갭(실질GDP와 잠재GDP간 괴리) 역시 –1.0%를 유지하고 있어 스태그플레이션 직전 단계라고 분석했다.
조 실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팽창적 재정·통화정책을 오랜 시간 적용하면서 경기부양 정책의 정상화가 지연됐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위험이 겹치면서 초인플레이션이 촉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태그플레이션에 따른 저성장의 고착화를 막기 위해서는 반시장적 제도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조 실장은 “스태그플레이션 극복과 지속적 성장모멘텀 구축을 위해서는 공급부문 개혁이 필요하다”며 “정부 지출 삭감, 감세정책과 규제 완화를 통해 산업혁신을 도모했던 ‘레이거노믹스’나 ‘대처리즘’을 벤치마크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대안으로 내년 일몰 예정인 ‘기업활력법’의 상시화 및 대상 확대를 통한 기업의 사업재편 지원과 규제개혁·노동개혁 등 반시장적 제도개혁 등을 제시했다. 금리인상에 대해서는 불가피하지만 인상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승석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2023년을 기점으로 경기 불황 국면에 본격 진입할 가능성이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이 부연구위원은 내년 상반기까지는 금리와 환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면서도 “1756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와 1600조 원의 기업부채는 금리 인상의 최대 장애요인”이라며 “변동금리 대출을 고정금리로 대환하는 등 대출 구조 변화를 통해 상환 부담을 낮춰 가계부채의 구조적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이 부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올해 2.3%, 내년 1.9%로 전망했다. 그는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연쇄 효과로 금리 인상 기조는 물가가 안정될 때까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고 그동안 원·달러 환율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복합적 위기의 인식 속에 체감경기가 부진하고 실물경제 위축의 가속화가 진행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권태신 한경연 원장은 “최근 전 세계가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처해 있다”며 “경제위기 대처를 위해서는 민간·기업·시장 중심의 혁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규제 혁파와 제도개혁을 통해 민간과 기업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끔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