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한화건설, 이라크에서 철수하는 이유는?

입력 2022-10-11 15:27 수정 2022-10-1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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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건설이 이라크에서 개발 중인 비스마야 신도시 전경 (사진제공=한화건설)
▲한화건설이 이라크에서 개발 중인 비스마야 신도시 전경 (사진제공=한화건설)

한화건설이 약 14조 5000억 원 규모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조성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과거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직접 이라크를 찾아 건설 현장에 방문하는 등 그룹의 역점 사업으로 꼽혔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공사가 중단된 지 2년여 만에 사업을 접게 된 겁니다. 한화건설이 비스마야 신도시 사업에서 발을 뺀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는데요. 단편적으로는 이라크 정부로부터 공사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리스크 관리를 위한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사업은?

▲한화건설이 공사 중인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의 일부 지역은 입주를 시작했다. (사진제공=한화건설)
▲한화건설이 공사 중인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의 일부 지역은 입주를 시작했다. (사진제공=한화건설)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사업은 101억 달러(약 14조 5000억 원) 규모로 도로와 상·하수도, 태양광발전 등 기반 시설과 국민주택 10만 가구를 조성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입니다. 한화건설은 이 사업을 처음 수주한 2012년 기준 국내 건설사 가운데 해외건설 수주실적 3위를 달성했습니다. 또한 2013년 시공능력평가에서 처음으로 10위 권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업계에서 한화건설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셈입니다.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은 정량적 지표에 외에도 한화건설에 의미가 있는 사업이었습니다. 김승연 회장이 사업을 따내기 위해 직접 회의를 주재했을 뿐만 아니라 수주 후에는 건설 현장을 방문하는 등 그룹 차원의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4년 12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현장 베이스캠프 직원식당에서 직원들과 식사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4년 12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현장 베이스캠프 직원식당에서 직원들과 식사하고 있다. (뉴시스)

특히 지난 2014년 12월 김 회장은 임직원 격려차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현장을 방문했는데요. 당시 김 회장은 예고도 없이 직원 식당을 찾아 임직원들과 함께 식사했으며, 임직원 전체와 외국인 근로자 대표를 초대해 이들이 가장 먹고 싶어 했던 광어회 600인분을 서울에서 직접 공수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회장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대한민국 건설사의 위대한 도전을 이어가는 한화건설과 협력사 임직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며 “한화는 ‘함께 멀리’의 동반자 정신으로 대역사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외에도 김 회장은 수 차례 이라크 현장에 직접 가면서 큰 관심을 반영했습니다. 이라크 현장에 자신의 야전숙소를 만들어 달라는 얘기를 할 정도로 애착이 강했습니다. 공사비 문제로 발주처와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오랜 기간 사업을 유지해 온 배경이기도 하죠.

한화건설 “지금 철수하면 손해 없어”

▲지난 2014년 12월 김승연 회장이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부르즈 한화 입구에서 현장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4년 12월 김승연 회장이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부르즈 한화 입구에서 현장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뉴시스)

이렇게 김승연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그룹의 역점사업으로 꼽혔던 비스마야 신도시 사업에서 한화건설은 왜 철수하게 된 걸까요?

현재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관련 사업의 공정률은 2012년 처음 수주한 사업의 경우 약 38%, 2015년 추가 수주한 사업은 약 26%입니다. 사업 수주 후 10년 동안 공정률이 38%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지만 2020년 코로나 19 확산으로 인해 공사가 멈춘 뒤 다시 진행될 가망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결국 한화건설의 주식을 100% 가진 ㈜한화는 지난 7일 “한화건설은 공사비 미지급 등 계약 위반을 이유로 이라크 국가투자위원회(NIC)에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관련 사업의 계약 해지를 통지했다”며 “3주 뒤 계약 해지에 따른 효력이 발생한다”고 공시했습니다.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전경 (사진제공=한화건설)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전경 (사진제공=한화건설)

한화건설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선수금과 중간정산금(공사 진행에 따라 받는 돈)으로 43억2200만 달러(약 6조2000억 원)를 받았는데 공사 미수금은 6억2900만 달러(약 9000억 원)입니다. 아직 받지 못한 돈이 수천억 원에 달하는 데도 한화건설이 사업을 포기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큰 손해를 보지 않는다”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사업 철수에 대한 한화건설 측의 공식적인 입장은 지금 철수하면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사업 시작과 함께 이라크 정부로부터 미리 받은 돈이 지금까지 사업을 진행하며 받지 못한 금액보다 많다는 뜻입니다. 결국 사업 철수를 미룰수록 미수금이 더 늘어나는 만큼 손해가 발생하기 전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2022년 반기보고서 연결재무제표 주석을 보면 해외도급공사 선수금이 8078억 원으로 기입돼 있습니다. 이 금액의 대부분이 비스마야 프로젝트에서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한화건설이 이 프로젝트에서 실제로 받은 현금은 한화건설의 설명대로 공사진행률에 따라 인식한 매출수익보다 좀 더 클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로 공사 중 수 차례 유입된 계약금과 중도금 등 선수금 덕분이죠. 제무제표에 나타난 해외도급공사 선수금을 이라크 프로젝트 선수금으로 간주할 경우 상계처리 후 공사미수금 잔액은 수백억 원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선수금을 처음에 25% 정도를 받아놨는데 현재 미수금과 선수금이 비슷한 수준으로 상계 처리를 하면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미수금이 더 커지면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합병 과정에서 부실 털어내기?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빌딩 전경 (사진제공=한화건설)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빌딩 전경 (사진제공=한화건설)

다만 업계에서는 현시점에서의 한화건설의 비스마야 신도시 사업 철수가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옵니다. 아직 협상의 여지가 남아있는데 상계 처리할 수 있다는 이유로 9000억 원 규모의 미수금을 포기하는 데에는 다른 의도가 있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한화건설은 모회사인 ㈜한화에 이달 말 흡수합병될 예정입니다. 한화건설이 일찌감치 부실을 덜어내기 위해 사업에서 철수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인데요. 한화건설이 비스마야 사업을 지속해서 이어가면 ㈜한화로 재무적 부담이 옮겨갈 수 있어 합병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을 사전에 제거했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에 대해 한화건설은 이라크 정세를 관망하며 사업이 정상화하길 기다렸지만 앞으로 사업이 재개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내린 결정이라며 합병 문제와는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앞으로 공사가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며 “지난해 10월 이라크 총선이 끝나면 이라크 정국이 정상화하면서 사업도 정상화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실제로는 개선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합병 시기에 맞춰 사업을 철수한 것이 아니라 회계·재무상 철수를 하면 손해가 발생하지 않을 시점이 하필 합병 일정과 겹친 것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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