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발단은 한 고등학생이 그린 만평이다. '윤석열차'라는 제목의 그림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을 형상화한 열차가 등장한다. 달리는 열차 앞에는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도망치고 있고, 열차 안에는 김건희 여사와 칼을 든 검사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는 캐릭터들이 타고 있다.
이 그림은 7월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카툰 부분 금상(경기도지사상)을 받았다. 지난달 30일부터 3일까지 한국만화박물관 2층 도서관 로비에 전시되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그림을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그림으로 규정하고 공모전 주최 측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학생의 만화 창작 욕구를 고취하려는 행사 취지에 지극히 어긋난다"며 "엄중히 경고한다”고 지적했다.
이후 정치권과 문화예술계에서는 "문화예술에 대한 탄압"이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만화 예술인들과 만나 "자유로운 표현을 정치적 의도로 막는 것은 참으로 경악스러운 것"이라며 "문화예술에 대한 탄압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 정부가 맹성하기를 촉구한다"고 경고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도 같은 날 "문체부의 조치가 고등학생 수상자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준 것은 물론 향후 작품 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한국만화가협회와 한국웹툰작가협회는 성명을 내고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분 금상 수상작에 대한 문체부의 '엄중 경고'에 대해 다시 '엄중 경고'한다"며 "경고와 행정조치 예고를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과거 박근혜 정부 때 불거졌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도 소환됐다.
김윤덕 민주당 의원은 국회 문체위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가 다시 떠오른다. 그때는 밀실에서 이뤄져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번에는 아예 공개적으로 예술인들을 압박하고 있다"며 "민주당은 예술인들에게 경고한 문체부를 더 엄중하게 경고한다"고 비판했다. 웹툰협회도 SNS에 "블랙리스트 행태를 아예 대놓고 거리낌 없이 저지르겠다는 소신 발언은 실소를 넘어 경악할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이명박ㆍ박근혜 정권 당시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정치적 견해가 다른 문화예술인들을 블랙리스트에 분류해 여러 방식으로 감시ㆍ차별한 것을 말한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전체 규모는 단체 342곳, 개인 8931명 등 총 9273건에 달했다. 분야별로는 영화가 2468건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로 문학(1707건), 공연(1593건), 시각(824건), 전통(762건), 음악(574건), 방송(313건) 등이다.
이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이유는 △특정 정치인 지지 및 정당 활동 △정부 정책 반대 및 비판 활동 △노동 문제에 대한 사회 연대 활동 등 크게 세 가지다.
구체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공연에 참여하거나 대선 당시 문재인 또는 안철수 후보 선거 활동에 참여한 문화예술인, 또 도종환, 김두관, 박원순, 노회찬 등 당시 야권 인사와 민주통합당 등 야당 지지자나 진보정당 지지 선언 참여자들이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명박 정부 당시 미국산 소고기 협상, 4대강 사업 등 정부 추진 정책에 대한 반대 운동을 하거나 용산참사 시국 선언 등을 반정부 투쟁으로 규정하고 관련 단체나 인물을 분류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세월호 참사나 역사 교과서 문제 등에 비판의 목소리를 낸 인물들도 이름을 올렸다.
그 밖에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 투쟁 지지, 쌍용자동차 국정조사 촉구 활동, 외국인 노동자 인권문제 관련 문화예술 활동도 블랙리스트 등록 사유에 포함됐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문화예술인들이 정부로부터 받은 피해는 △사찰 △감시 △검열 △배제 △통제 △차별 등이 있다.
이들은 전화 도청, 컴퓨터 해킹 등 감시를 당했고 작품 활동과 관련해 사전ㆍ사후 검열을 받기도 했다. 지원금을 삭감하거나 중단하고 행사 초청에서 배제하거나 수상 목록에서 떨어뜨리기도 했다. 친정부적인 문화예술 단체에는 특혜를 주고, 블랙리스트에 속한 단체에는 관련 사업의 위상을 격하하며 차별적 대우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