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네이버 등 빅테크 기업이 금융분야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가운데 금융안정성과 금융소비자 보호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29일 자본시장연구원은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빅테크의 금융진출과 대응'을 주제로 한 자본시장연구원 개원 25주년 기념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날 콘퍼런스에서는 빅테크 금융진출의 긍정적인 효과는 살리고 위험은 최소화하기 위한 규제 방향성이 논의됐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빅테크의 금융진출에 양면이 있다며 "빅테크는 금융 소비자의 혜택을 향상시키지만, 이와 관련해 불공정경쟁의 가능성도 커진다"고 말했다.
실제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빅테크 기업은 기존 금융회사와 비교했을 때 데이터의 양 측면에서 우위를 차지한다. 또 자사 금융상품을 우대하고 묶음 판매를 하는 등 플랫폼의 시장지배적 지위를 활용한 영업을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빅테크 기업의 금융진출은 이미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빅테크의 간편결제 서비스를 통한 일평균 거래액은 지난해 6065억 원으로 전년 대비 35% 증가했다. 간편송금 서비스 이용실적 역시 지난해 5045억 원으로 전년도 보다 41.5% 올랐다. 빅테크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게 하는 오픈뱅킹도 2021년 기준 이용자가 3000만 명을 넘어섰다.
이에 이 연구원은 "빅테크가 오픈뱅킹 정보공유 정책으로 얻은 데이터를 공유하게 하는 등 공정경쟁을 위한 금융정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빅테크의 운영위험 등 리스크 수준이 높다는 점을 들어 금융당국의 규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연구원은 "어제 발생한 토스뱅크의 환전서비스 오류도 빅테크의 운영위험을 나타내는 사례"라며 "한국의 경우 특히 낮은 규제 강도, 넓은 업무 범위, 빠른 장악력으로 인해 금융 리스크가 클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동일 기능-동일규제를 적용하고, 금융복합기업집단 지정, 합리적 금산분리 규제 적용 검토, 내부통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제도 장치를 통한 규제의 필요성에는 국제사회도 공감한 부분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각각 플랫폼 독점 종식법 등을 발의하고 디지털 시장법(DMA)을 발표하는 등 빅테크 규제 법령을 정비 중이다. 빅테크에 대한 사전 규제로 데이터 공유와 시장지배적 지위의 활용 제한 등을 요구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조성욱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해외는 이미 입법 과제를 완료했거나 추진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 법제도가 없으면, 해외기업의 불법 행위에 대해 한국 정부는 이를 제재할 수단이 없어서 국내기업과 소비자만 손해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진행된 패널토론에서 참석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규제의 틀을 만들어야 할지에 관한 논의를 지속했다.
권태훈 카카오뱅크 준법감시인은 "감독당국이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불공정 거래 행위에 적극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오히려 소비자의 혜택이나 편의성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규제가 나올 수 있기에 '동일 행위 동일 규제'를 적용할 때, 보다 세분화된 분석을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영서 KB금융지주 디지털플랫폼총괄은 "EU처럼 고객의 동의 아래 빅테크의 데이터도 다른 사업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이어 "빅테크에 대한 자율규제만으로는 제대로 관리가 안 될 것"이라며 "정부에서 빅테크 규제에 대한 입법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주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빅테크는 과연 (기존 금융회사와) 무엇이 다른가에 초점을 맞춰서 빅테크에 맞는 제도를 설계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빅테크 규제는 금융당국 혼자할 수 없고 공정경제 당국과 정보 보호 당국과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 국장은 금융회사 측에도 경쟁력을 갖출 것을 당부했다. 그는 "금융회사들이 빅테크에 경쟁할 수 있는 기존 플랫폼들에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전환을 추진 하는 등 빅테크 독점력 강화에 효과적인 대응 수단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도 어떤 지원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