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양면성

입력 2022-09-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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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환·기후변화 대응 이정표…글로벌 무역 시스템엔 갈등 요인

8월 16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법안이다. 이 법안은 개인의 처방약 비용을 낮추고, 건강보험에 대한 의료 보조금을 확대하여 미국 가계와 소비자의 비용부담을 완화한다. 그리고 국세청(Internal Revenue Service)의 세금 집행 기능을 강화하고, 기업에 최소 법인세 15%를 부과하여 재정적자를 축소하고 세액공제의 재원을 마련한다.

또한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청정에너지 비용에 대한 세액공제, 친환경에너지 기술과 생산에 대한 투자 확대, 탄소배출 감소를 위한 기업과 가계의 노력에 대한 보상 등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일정 조건을 갖춘 전기자동차 구매 시 최대 7500달러의 세금을 공제하고 태양열, 풍력 및 지열 등 재생에너지 생산과 기술개발에 대해 기존 세액공제를 확대하며, 미국 전력망에 청정에너지 사용을 장려한다.

이 법안은 청정에너지 이용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3690억 달러를 지출할 예정이다. 이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전환에 대한 미국 정부의 유례없는 대규모 재정 지원이다. 법안이 차질없이 시행되면 미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수준보다 40% 이상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IRA가 없었다면, 같은 기간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분은 26%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었다.

법안은 궁극적으로 미국 소비자와 산업계가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전지판, 풍력 터빈 등을 미국 내에서 생산하도록 권장하여 미국이 세계 청정에너지 경제에서 앞서나가고, 수백만 개의 에너지 관련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돕는 것이다. 아울러 새로운 청정에너지 산업 기반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부품과 원재료에 대한 미국 내 제조 능력의 신속한 확충을 목표로 한다.

IRA는 미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소시키고, 파리협약에 따른 기후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다. 동시에 기후변화 대응과 산업정책을 결합한 혁신적인 법안으로 평가할 만하다. 미국의 관련 부처는 연말까지 이 법안의 구체적인 시행령과 세부지침을 마련함으로써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 세계에 보다 명확한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그리고 IRA는 전 세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미국의 기후위기 대응 리더십은 다른 국가들의 공조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당장 이 법안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눈에 띄게 줄어들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법안의 구체적인 영향이 나타날 것이다. 미국의 가정이 어떤 종류의 자동차를 구매하고, 어떤 연료를 이용하여 집을 난방할 것인지에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약값 비용은 감소하고, 건강보험의 가격 인상을 억제할 것이며, 합당한 세금을 내지 않는 기업에 대한 국세청의 대응이 강화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법안의 야심 찬 산업정책 목표가 미국의 산업 현황과 공급망 현실을 간과한다는 지적이 있다. 즉 미국의 공급망이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하려면 중국을 넘어서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중국은 배터리 생산에 필수적인 원료인 리튬 등 주요 광물의 60~80%를 가공하고 정제한다. 또한 2차전지용 리튬화합물의 1위 생산국은 중국이다. 게다가 미중 간 갈등이 첨예해짐에 따라 광물자원 확보를 두고 국가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다른 방안으로 자체 광산 개발이 있지만 인허가, 지역의 반대, 오염물질 처리 등 극복해야 할 난관이 수두룩하여 추진이 쉽지 않다.

IRA가 가진 다른 문제는 글로벌 무역 시스템 내에서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IRA가 담고 있는 보조금 성격의 지원과 미국산 우대 조항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는 보호주의 조치들이다. 이미 유럽연합(EU), 한국, 일본은 해당 IRA 조항이 WTO의 규범을 위반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 상태이다. 특히 EU는 이 법안이 미국 생산자에게 유리한 지위를 부여하고, 유럽과 타국 생산자를 차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IRA가 규칙 기반 무역질서를 훼손하고, 글로벌 무역의 공정성을 후퇴시키는 법안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IRA가 한국과 EU 등 주요 동맹국들의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하는 미국의 조치들에 대해 국제기구를 통한 분쟁해결 절차를 밟는 것도 방법이다. 이와 별개로 관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파악하고 신속하게 대응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렇게 준비한 산업계 요구사항을 미 당국에 전달하여 시행령과 세부규칙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국익에 훨씬 중요하고 효과적이다. 지금은 위기 극복 방안을 디테일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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