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필자의 전공에 더 맞는 곳은 미국이 아닌 영국이었다. 영국의 어느 석학(필자의 지도교수)에게 편지를 보내 박사과정 입학수속을 밟으며 장학금을 알아보았는데, 미국과는 달리 영국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유일하다시피 한 것이 영국 외무성 장학금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서류를 통과하고 영국 대사관에 면접을 갔다. 면접관이던 영국 외교관이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서툰 영어로 답하는 시간이었는데, 그가 대뜸 ‘왜 영국 정부가 이런 장학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필자는 당황했지만 영국에 우호적인 인재들을 양성해서 장기적으로 영국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취지의 답을 하였다.
외국에서 몇 년간 공부를 하게 되면 그 나라가 제2의 모국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거기에다 필자는 영국 정부와 대학에서 제공한 장학금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영국 대사관 초대를 받아 외무성 장학금을 받은 다른 분들과 교류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이런 세심함 때문인지 영국의 외무성 장학금은 세계 곳곳에 영국에 우호적인 리더들을 배출하여 영국의 국제적 위상을 유지하고 국익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나아가 영국은 외국 학생들을 대학에 유치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실제 영국 유학생활 당시 대학마다 세계 곳곳에서 온 학생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외국 유학생이 없으면 영국 대학 대부분이 망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허언처럼 들리지 않았다. 대학마다 외국 학생들이 많은 것은 미국, 호주, 캐나다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이 많은 학생들은 학업을 마치고 모두 자기 나라로 돌아갈까? 영국, 미국, 호주, 캐나다 같은 국가들은 젊고 우수한 외국 인재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대학을 활용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 이공계의 가장 우수한 인재들은 학부를 마치면 스탠퍼드, 칼텍(캘리포니아공과대학),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 등으로 유학을 떠난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 대학들은 천문학적 연구비를 바탕으로 넉넉한 장학금, 생활비, 연구여건을 제공하며, 졸업 후에는 실리콘밸리의 기술기업 등 좋은 조건의 직장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널려 있다. 미국 이민이 쉽지 않다지만 젊고 우수한 두뇌들에게 문은 항상 열려 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최고의 인재들 태반이 한국에 돌아오지 않는 이유이다. 반면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대학들을 매개로 하여,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최고의 두뇌들을 진공청소기처럼 흡수하고 있다. 이렇게 유입된 최고의 인력들이 21세기 미국의 첨단기술 분야로 흘러 들어가 미국 경제의 원동력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계속 경신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미국과 영국의 경험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가 멀지 않았고, 노동력 부족은 이미 시작되었다. 반도체만 해도 현재 연간 수천 명의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대학 내의 학과 정원 조정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대학을 통해 외국의 젊고 우수한 인력을 받아들이는 전략을 강구할 시점이다. 대학들의 외국 학생 유치를 지원하고, 우수 학생을 지원하는 장학제도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과감한 고등교육 재정투자를 통해 국내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출산율 반전에만 매달리지 말고, 대규모의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피함을 인정하며 지금 당장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