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기업 재고가 대외변수에 따른 일시적 조정이 아닌 본격적인 경기침체의 신호탄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15일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 활동으로 본 최근 경기 상황 평가’ 자료를 발표하며 “지난 2분기 산업활동동향의 제조업 재고지수 증가율(계절조정 전년동기비)이 18.0%를 기록해 분기별 수치로는 지난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2분기(22.0%) 이후 26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 폭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대한상의는 “재고는 경기 변동에 따라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줄어들게 마련이지만 최근 재고 증가 흐름은 작년 2분기를 저점으로 4개 분기 연속 상승하는 이례적인 모습”이라며 “이처럼 분기 기준으로 장기간 재고지수가 상승세를 보인 것은 2017년 이후 4년 만에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규모별로는 작년 2분기 대기업의 재고지수 증감률이 -6.4%에서 올해 2분기에는 22.0%로 치솟았으나, 같은 기간 중소기업은 1.2%에서 7%로 상대적으로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다.
대한상의가 한국평가데이터에 의뢰해 매 분기 재무제표를 공시하는 제조업체 상장기업(약 1400여 개)을 분석한 결과, 대기업의 재고자산은 작년 2분기 61조4770억 원에서 올해 2분기 89조1030억 원으로 증가해 중소기업 재고자산의 증가분(7조 4370억 원→9조 5010억 원)을 압도했다.
제조업 전체로는 작년 2분기 대비 올해 2분기 재고자산이 39.7% 증가했다. 세부 업종별로는 ‘비금속 광물제품’(79.7%), ‘코크스·연탄 및 석유정제품’(64.2%), ‘전자부품ㆍ컴퓨터ㆍ영상ㆍ음향 및 통신장비 제조업’(58.1%), ‘1차 금속’(56.7%) 등의 재고자산 증가율이 특히 높게 나타났다.
특히 재고자산 물량이 가장 많은 ‘전자부품ㆍ컴퓨터ㆍ영상ㆍ음향 및 통신장비 제조업’의 경우 전체 제조업 재고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년 2분기 24.7%에서 올해 2분기 27.9%로 비중이 확대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들은 이를 단기적 이슈로 인한 재고 상승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대한상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 글로벌 인플레이션, 미국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 등으로 글로벌 수요 기반이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를 반영하듯 제조업 생산지수와 출하지수는 4개 분기 연속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출하의 감소 폭이 생산 감소 폭보다 더 커 생산-출하 간 디커플링(격차)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판매(출하)가 줄어들면 제품이 쌓이고(재고), 기업들이 이에 맞춰 생산을 감소시켜 생산-출하가 비슷한 추세를 보이게 된다. 그러나 최근의 생산지수-출하지수 디커플링은 오히려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는 기업들이 판매(출하) 부진에도 생산을 탄력적으로 조정하지 못하고 오버슈팅(Over-shooting)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분기 말부터 기업들이 일부 생산을 조절하고 있으나 재고가 이미 높은 수준이라 3분기부터는 생산 감소가 본격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대한상의는 내다봤다.
기업들이 공장 가동률을 낮추게 되면 유휴 인력이 발생하고 그만큼 고용과 신규 시설투자가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미 상당수 기업은 올해 채용 및 시설투자를 재검토하거나 보류하는 추세다.
대한상의는 “우리 경제는 대외여건의 악화로 인해 수출증가율이 둔화하고 무역적자가 심화하는 등 수출이 타격을 받고 있는 데다, 고물가와 금리 인상으로 내수 진작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업 재고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오버슈팅돼왔던 생산이 급감할 경우 경기 급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하반기 정책당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