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기존 대법원 판결 등에 따르면 투자자들이 사업보고서 허위기재 등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배상의무자인 대표이사가 책임을 면하려면 ‘상당한 주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허위기재 등을 알 수 없었음을 증명해야 했다.
반면, 이번 판결에서는 합리적인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운영하는 것은 물론, 실질적으로 운영됐는지를 증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내부통제시스템이 합리적으로 구축되고 정상적으로 운영됐는지는 어떤 제도가 도입됐고, 어떤 직위가 존재했다고 곧바로 긍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제도의 내용이나 직위에 부여된 임무가 무엇인지, 제도가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임무가 정상적으로 수행됐는지를 살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부감사법에 따른 내부회계관리제도가 도입되거나 재무담당임원(CFO)이 임명돼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봤다. 이러한 부분은 손해배상책임을 면하려는 대표이사 등이 증명해야 한다고도 판시했다.
회계법인에 대해서도 “경영자의 진술이나 피감사회사가 제출한 자료 등을 신중한 확인절차 없이 그대로 신뢰해서는 안 되고, 회계업무나 피감사회사가 속한 업종의 특성·경영상황 등에 비춰 부정 등이 개입되기 쉬운 상황이 있으면 통상보다 엄격하게 감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주의의무 준수 여부는 감사인이 증명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번 판결은 2000억 원대 횡령 사건이 발생한 오스템임플란트의 소액주주들이 최규옥 회장과 회장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소액주주들은 횡령 기간 동안 공시된 감사보고서, 사업보고서, 분기보고서 및 반기보고서에 횡령 금액이 반영되지 않아 거짓 정보로 일반 투자자들을 기망했다며 배상을 청구했었다. 회사 측은 내부통제시스템을 실질적, 정상적으로 운영했는지 증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은행 내부통제 강화 등을 골자로 한 은행법 개정안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우리은행 700억 원 횡령 등 최근 주요은행에서 횡령사고가 발생하면서 금융권에서는 관련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됐었다. 이같은 개정안은 이달말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용역이 마무리된 후 금융당국 논의를 거쳐 10월 경 입법화할 전망이다.
이번 판결은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밝힌 입장과 배치된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앞서 16일 이 원장은 기자단 간담회에서 우리은행 횡령과 관련해 관리감독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상식적으로 수긍이 가능한 내용과 범위가 아니라면 금융기관 최고 운영 책임자한테 직접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대원칙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