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상장협) 정책2본부장은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상장회사회관에서 진행된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외부 로펌들이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가 대표 소송 제기 결정권을 갖는 데에 적법하다는 의견을 냈다’는 말에 이같이 말했다.
최근 법무법인 대륙아주와 법무법인 원, 정부법무공단 등은 보건복지부의 의뢰를 받고 국민연금수탁자지침 개정안의 위법성을 검토한 후 ‘적법하다’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수책위가 기업 경영진을 상대로 한 대표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경영계의 주장과 반대되는 결과다. 현재 대표소송은 기금운용본부가 전담하고 있다.
이 본부장은 “(위 로펌들은)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에서 지침을 개정해서 수책위가 대표소송을 할 수 있게 해 적법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여기에 법리상 2가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디에서 어딘가로 권한을 위임한다고 할 때 위임받은 곳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수책위는 국민연금법상 결정기구가 아닌 자문기구다”라고 했다. 권한을 위임받을 수책위엔 권한이 없다는 뜻이다.
나머지 한 가지에 대해서는 “(일반 회사를 예로 들면) 이사회 내 위원회를 둬 위원회에서 결정한 사안은 이사회에서 결정된 것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면서 “그럼에도 이사회에서 이사회 내 위원회에서 결정한 사항을 번복할 수 있게 해놨다”고 했다. 이 본부장은 “이런 맥락 구조를 보면 기금위에서 결정하게 돼 있는 사항을 위원회가 결정하게 하려면 기금위 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여야 한다”며 “그런 위원들이 아닌 전혀 다른 자문기구인 수책위에서 (대표소송을 결정) 하는 게 체계적으로 맞다고 할 수 있나”라고 했다.
국민연금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이 본부장은 지배구조라고 꼬집었다. 정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기금위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며 기금위 20명 중 5명은 정부 부처 관계자다. 이 본부장은 “다른 나라는 정부의 입김이 우리나라처럼 강하지 않다”며 “(기금위 중 정부 측 위원이 많아) 정부가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어 정치적 독립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본부장은 “수책위도 구성상(사용자, 근로자, 지역가입자 단체가 각각 3명씩 추천) 특정 이해관계 집단을 대표할 수 있다”며 “(수책위 위원들은) 자본시장에 대해서도 잘 알고 기업 경영과 경제에 전문가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수책위 구성 방향은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라면서 “국민의 소중한 자산을 굴리는 국민연금의 제 1목표는 안정성과 수익성”이라고 강조했다.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과 관련해 금융위원회가 분할에 반대하는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한다는 안에 대해 이 본부장은 “효익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엑시트할 수 있는 권리라 주주 보호보다는 기업구조조정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의 안은 LG화학이 배터리 사업부를 떼어내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으로 상장시키면서 꼼수 ‘쪼개기 상장’ 논란에 따른 것이었다. 자회사의 상장으로 LG화학이 주가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중복 상장에 따른 디스카운트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해 8월만 하더라도 주당 100만 원을 넘보던 LG화학은 LG엔솔이 상장 계획을 본격화하면서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상장 당일에만 8.13% 하락했다. 이후 주가를 회복하지 못한 LG화학은 지난 3월 최고가의 절반도 안 되는 43만 원 선까지 떨어지면서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당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신주인수권 부여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신주인수권을 줄 주주 범위를 정하기 어렵다는 점과 상법상 신주 주주배정 원칙과의 조화 여부, 자회사 상장 전 모회사 주가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 등으로 시장의 반발이 있었다. 지난달 14일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 시 주주 보호 방안 정책 세미나’에서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장단점과 현실적 한계 등을 추가로 꼼꼼히 검토해 도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공약보다는 후퇴한 주식매수청구권을 일반 주주 보호 방안으로 내놓은 것이다.
이 본부장은 “기존에 물적분할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며 “부실을 떼어내 재무구조를 개선하거나 팔아서 원래 회사에 이익이 됐던 것”이라고 했다. 앞서 물적분할은 IMF 외환위기 당시 기업구조조정의 수단으로 도입된 제도다. 하지만 최근 LG화학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잘 나가는 부서를 나누면서 문제가 됐다.
그는 “새로운 정부의 규제 패러다임은 ‘네거티브’”라며 “잘 되고 있던 건데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 핀셋처럼 콕 집어 규제를 적용하는 게 맞다”고 했다. 모든 물적분할에 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보장할 게 아니라 특정 기간 내에 상장할 계획이 있거나 핵심 부문을 떼어내는 경우 등에 한해서만 주주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미국은 주식 설계에 대해 제한이 없어 다양한 자금 조달이 가능하지만 우리는 법에서 정해진 형식이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기업 억제 수단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대주주와 임원의 주식 매도 시 처분 계획 사전 공시 의무화에 대해서는 “투자자와 대주주, 임원 모두에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 등 임원 8명이 상장 한 달 만에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을 대거 매각하면서 800억 원이 넘는 차익을 챙기며 ‘먹튀’ 논란이 일자 카카오페이를 비롯한 카카오 관련 주식은 바닥을 쳤다. 지난해 11월 24만 원 선이었던 카카오페이는 지난달 5만 원 선까지 하락했다. 이에 금융위는 이달 대통령실에 대주주와 임원이 주식을 매도할 땐 사전에 공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업무 보고를 마쳤다.
이와 관련해 이 본부장은 “사전 공시가 나오면 주가는 떨어질 것”이라며 “기존 주주들은 사전 공시로 엑시트는 하겠지만 내려간 주가로 손실을 볼 수 있다”며 “대주주와 임원 입장에서는 차액을 기대하고 처분을 하는데 공시가 되면 주가가 떨어져 차액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대주주나 임원 등이 주식을 매도할 때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신고하도록 돼 있으나 공시되는 건 아니다”라며 “이는 우리나라처럼 ‘먹튀’가 아니라 내부자 거래 방지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상장협은 사전 공시는 신중히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대주주와 임원 입장에서는 재산권 침해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배경에서다. 이 본부장은 “다른 나라는 임원진 등이 스톡옵션을 매각할 때 공시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