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그룹 AOA의 멤버 찬미도 올해 엄마 성을 따라 김찬미에서 임찬미로 개명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나라는 자녀가 아버지 성을 물려받도록 하는 ‘부성(父姓) 우선주의’를 따르고 있는데요. 진태현 박시은 부부나 찬미처럼 엄마의 성을 따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걸까요?
과거 부성주의는 ‘부성 강제주의’였습니다. 자녀는 어떠한 예외도 없이 아버지의 성을 따라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2005년 2월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부성 강제주의 역시 개정됐습니다. 여전히 부성을 따르는 게 원칙이지만, 부모가 혼인신고를 할 때 합의할 경우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게 바뀐 것이죠. 또 재혼·이혼가정의 자녀도 법원의 허가를 받아 성을 바꾸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문제는 그 절차가 아주 복잡하다는 겁니다. 현재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을 물려주려면 ‘혼인신고 시’ 결정해야 합니다. 혼인신고서를 작성할 때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4항 질문에 ‘예’로 답해야 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부와 모 사이에서 태어날 모든 자녀의 성과 본을 모의 성과 본으로 정하기로 협의한다’는 내용의 협의서와 주민등록증 사본을 제출해야 모든 절차가 끝납니다. 진태현 박시은 부부의 경우에는 혼인신고 당시 이미 엄마의 성을 주기로 체크했다고 합니다.
만약 혼인신고 시 4항 질문에 ‘예’라고 표시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태어날 자녀에게 어머니의 성을 주는 게 매우 힘들어집니다. 부모가 서류상 이혼 후에 다시 혼인신고를 하면서 해당 조항에 동의해야 합니다. 나중에라도 자녀의 성을 엄마 성으로 바꾸고 싶다면 가정법원에 성·본 변경 심판을 청구해 재판을 거쳐야 합니다. AOA 찬미가 가정법원을 통해 성과 본을 바꾼 사례입니다.
그런데 최근 법무부가 부성 우선주의 폐기 방침을 사실상 중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5월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 관계자는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여서 법 개정 작업이 (2025년 이후로) 늦춰질 수 있다”며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면 (법 개정 작업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1년 만에 법무부가 계획을 뒤집은 겁니다.
부성 우선주의와 관련해서는 이미 상당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성가족부의 2020년 ‘국민다양성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73.1%는 ‘부성 우선주의가 아닌 부모 간 협의로 자녀 성을 정하는 데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지난해 12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8.5%가 ‘(자녀의 성은) 부모가 협의해 누구의 성을 따를지 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문항에 찬성했습니다.
해외에는 한국처럼 아버지의 성이 우선하도록 법제화한 곳이 거의 없습니다. 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스웨덴 등 유럽국가에서는 부모의 성씨 가운데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따로 선택하지 않으면 엄마 성을 따릅니다. 미국의 경우 혼인신고가 아닌 자녀의 출생신고 시 부모가 성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성이 아닌 새로운 성을 써도 대다수 주에서는 규제하지 않습니다. 이에 같은 부모에게 난 자녀들의 성이 제각각인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처럼 유교 문화 영향을 받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부성주의 원칙은 폐기된 지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 성씨 ‘성(姓)’은 ‘날 생(生)’ 자에 ‘여자 녀(女)‘ 부수를 쓰는데요. 정작 남성 성씨와 본을 우선적으로 따르게 한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 엄마의 성을 따르는 게 자연스러운 선택지 중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