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집값을 보면서 내 집을 사는 것은 엄두가 안 나 주식에 ‘다걸기’를 했습니다. 내가 사는 것만 꼭 떨어지고, 팔면 올라가는 건 뭔지. 지금도 수입의 절반을 빚 갚는 데 쓰는데, 시장 금리가 오르고 있어 어떻게 감당할지 막막하네요.”
지난해 주부 이승연(35·여) 씨 남편 몰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해 주식시장에 뛰어든 이유는 분명했다. ‘지금 영끌하지 않으면 영원히 벼락거지가 될 수 있다’는 절실함이었다. 이 씨는 “그렇게 큰돈을 빌린 건 처음이라 겁이 나서 눈물이 다 났다”며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감당이 안되는 상황”이다라고 털어놨다.
이 씨처럼 초저금리에 취해 ‘빚투(빚내서 투자)’·‘영끌’한 개미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14일 서울 채권시장에서 오전 기준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연 3.6%까지 뛰는 등 증권·채권·외환시장이 휘청이고 있어서다.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된 가운데 질서 있는 레버리지 관리가 동학개미의 최대 현안이 됐다.
이날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증시(코스피·코스닥)의 신용융자잔고는 지난 10일 기준 21조6392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올해 들어 지난해 말(23조886억 원) 대비 6.2%(1조4494억 원) 줄어든 수치다. 같은 기간 동안 코스피지수가 12.8%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국내 증시가 부진에 허덕이는 와중에도 국내 투자자들의 ‘빚투’는 상대적으로 감소폭이 덜한 모습이다. 신용거래융자잔고는 투자자들이 증권사로부터 주식이나 현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잔고로, 아직 상환되지 않은 주식을 말한다.
최근 국내 증시가 긴축 기조와 경기 둔화 우려로 주가 저점을 낮춰가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저점 매수’를 보고 뛰어든 공격적인 빚투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신용융자잔고 규모는 코스피 지수가 3000선 뛰어넘던 지난해 초와 비슷하고,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배로 많은 상황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주식시장은 하락하는데 레버리지성 자금이 유입되는 등 올해 들어 신용잔고의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며 “LG에너지솔루션 상장 당시 환불된 청약 증거금 약 110조 원 중 일부가 증시로 재투자된 영향과 3월 대선을 거치며 관련 테마주에 신용베팅이 급증한 영향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미국의 금리인상 기조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기준금리가 꾸준히 오르면서 ‘영끌족’의 빚투 이자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한국은행의 4월과 5월 연이은 인상에 따라 기준금리는 1.50%에서 1.75%로 오른 상태다. 가계대출 금리도 덩달아 뛰고 있다. 지난 4월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금리는 연 4.05%로 한 달 사이 0.07%p 상승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3.90%로 0.06%포인트 오르면서 9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일반 신용대출도 5.62%로 0.16%포인트 급등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면 한국은행의 빅스텝 가능성도 같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가계부채 취약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개미들이 빚투의 대가로 내야할 이자도 늘면서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증권사들은 기준금리가 오르자 신용거래융자 이자율을 속속 올리는 추세다. 신한금융투자는 융자 기간 7일 이내 이자율을 연 4.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메리츠증권(0.10%포인트), 유안타증권(0.25%포인트)에 이어 DB금융투자는 전 구간 이자율을 0.20%포인트 올렸다. 대신증권도 융자기간 8일 이상 이자율을 0.50%포인트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