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40년래 최고치로 치솟은 물가를 두고 후회와 탄식이 쏟아지고 있다. 높은 물가가 일시적 현상이라고 자신하던 미국 고위 관리들이 일제히 ‘성찰’을 시작한 배경은 무엇일까.
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취재진에게 에너지와 식품의 높은 물가를 단기간에 낮출 방법이 거의 없다고 인정했다.
그는 “현재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가 스위치 하나로 휘발유 가격을 내릴 수 없고 식품도 마찬가지”라며 “휘발유 가격을 갤런당 3달러 아래로 낮추는 방법을 파악하지 못해 행동에 나설 수가 없다”고까지 말했다. 미 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이날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4.6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작년 2월 “가장 큰 위험은 너무 크게 가는 게 아니라 너무 작게 가는 것”이라며 인플레이션 우려를 일축, 재정지출 확대 필요성을 강변했던 바이든이 약 1년 만에 완전히 꼬리를 내린 것이다.
전날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CNN에 출연해 지난 1년간 인플레이션 궤적에 대해 잘못 판단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물가를 끌어올린 예상치 못한 경제 충격이 있었다”며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준 공급 병목 현상을 당시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옐런 장관은 1년 전인 작년 3월만 해도 미국 인플레이션을 ‘작은 위험’이라며 관리 가능하다고 말했다.
물가를 자신한 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도 마찬가지였다. 파월 의장은 작년 6월 미국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5.4% 상승하며 13년 만에 최고치를 찍은 상황에서도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그는 연준이 물가 급등에 너무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에도 상승률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일시적이라며 믿어달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 물가상승률은 11월 6.8%, 12월 7%로 치솟았고 올해 3월 급기야 8.5%를 찍으며 40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 재무장관이 판단을 잘못했다며 이례적인 반성을 하고, 대통령까지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다고 토로한 것을 두고 미국 정부가 직면한 인플레이션 위기 수준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특히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접근 방식을 바꿨다는 분석도 있다. 정치 컨설턴트 켄 스페인은 “인플레이션은 중간 선거의 핵심 이슈가 될 것”이라며 “물가 문제가 유권자들의 마음에 똬리를 틀었고 11월까지 바뀌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을 지낸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지금까지 미 행정부가 인플레이션 관련 내놓은 발언들이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며 “새로운 접근 방식은 그들이 인플레이션 해결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음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을 이해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플레이션 전망이 어둡고 대응 수단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어설픈 변명을 구구절절 늘어놓느니 솔직하게 현실을 인정, 유권자의 마음을 달래기로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