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소비자 각성시대

입력 2022-06-01 15:00 수정 2022-06-0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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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테라 사태 안타깝죠. 그런데 정부가 어떻게 할 방법이 있나요?”

루나·테라 사태로 금융시장이 뒤숭숭했던 어느 날, 한 금융당국 관계자가 말문을 열었다. 그의 논지는 단 하나. 관련 법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시장에 이익을 얻고자 뛰어들었다면, 손실도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그랜드캐니언을 가보면 안전 펜스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관광객들은 낭떠러지 끝에 서서 아슬아슬한 포즈를 취하죠. 세계적인 경관을 사진에 담으려고요. 그러다 추락사고도 발생하죠. 현지 시선은 ‘안전장치를 제대로 해놓지 않은 그랜드캐니언’이 아니에요. ‘위험한 행동을 한 관광객의 책임’으로 쏠려요. 스스로 안전을 챙기지 않았다는 거죠.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관광지에서 추락사고가 발생하면 ‘왜 펜스를 치지 않았느냐’고 난리가 나겠죠.”

법적 울타리조차도 없는 가상자산 시장은 그랜드캐니언과 다를 바 없다. 가격이 하루아침에 99% 폭락해도 주식시장에서와 같이 서킷브레이커(매매 일시 정지 제도)조차 작동되지 않는 곳, 최고의 ‘한 방’을 노리는 수백, 수천만 명이 몰리는 곳이다.

국내 금융·자본시장은 혼란기다. 은행, 증권 등 제도권 시장보다 제도권 밖에 있는 시장에 사람들이 더 몰린다. 운이 좋으면 기대치보다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일확천금을 꿈꾸며 자신의 돈을 ‘무법지대’에 태운다. 그렇다고 정부가 그 행위 자체를 금지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와 시장주의를 추구하면서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실체가 불분명한 가상자산을 거래할 수 있도록 사실상 허가한 정부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가상자산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지, 울타리(법)는 어떻게 칠지 말이다. 전통적인 금융과 다르기 때문에 제도권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시선은 이제 거둬야 한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소비자들은 내 발끝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항상 유념해야 한다. 펜스가 없는 곳에서 안전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소비자 각성 시대’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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