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기업인을 배임죄에서 보호해주는 ‘경영 판단원칙’을 인정하는 데 소극적이란 분석이 나왔다. 경영 판단원칙이란, 이사가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하고 재량 범위 내에서 행위를 했다면 비록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개인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에 의뢰해 지난 10년(2011년~2021년)간 경영 판단원칙을 다룬 대법원 판결을 분석한 결과를 29일 밝혔다.
10년간 대법원은 총 89건(민사 33건·형사 56건)의 경영 판단원칙을 다뤘다. 이 중 경영 판단원칙을 인정한 재판은 34건(38.2%), 부인한 재판은 55건(61.8%)으로 나타났다.
형사재판 56건의 경우, 경영 판단원칙 부인으로 최종 유죄판결이 난 재판이 42건(75%)으로, 인정(무죄) 사례 14건(25%)보다 3배나 많았다. 특히 계열사 지원에 따른 이사의 횡령·배임 여부를 다룬 7건의 재판 중 단 1건만 경영 판단원칙이 인정됐다. 민사재판의 경우, 20건(60.6%)이 인정됐고, 13건(39.5%)은 부인된 것으로 드러났다.
전경련은 법원의 경영 판단원칙 적용이 엄격하고 일관성을 찾기 어려워 일선 경영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그룹 내 부실 계열사에 대한 지급 보증이 배임죄로 문제가 될 경우 경영 판단원칙을 인정해 무죄로 판결하는가 하면, 회사에 손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유죄를 내리기도 했다.
반면 미국 법원은 배임죄가 없을 뿐 아니라 이사의 재량 범위 내 이뤄진 판단인지, 필요한 절차를 밟았는지 등 명확한 기준으로 경영 판단원칙을 살펴보고 있다는 게 전경련 측 설명이다.
최준선 명예교수는 “법원이 경영일선의 모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데 전문경영인이 내린 고도의 전문적 판단 내용까지 법원이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치다”며 “경영판단원칙에 대한 적용 기준을 법에 명시하고, 법원은 미국처럼 절차적인 하자 여부에 중점을 둬 사법적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